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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Oct 20. 2023

스스로 찍은 종지부

<익스펜더블 4> 스캇 워프 2023

 어느덧 네 번째 시리즈이지만, 동력이 떨어졌다. <익스펜더블> 시리즈의 동력은 어쩔 수 없이 배우들이다. 혹자는 “액션 노인정” 같은 한줄평을 남겼지만, 어쨌거나 왕년의 액션스타가 총출동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만큼은 흥미로웠다. 실베스터 스텔론, 아놀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가 한데 모이는 장면이라던가, 제이슨 스타뎀, 돌프 룬드그렌, 장 클로드 반담, 척 노리스, 해리슨 포드, 안토니오 반데라스, 웨슬리 스나입스, 멜 깁슨, 랜디 커투어, 그리고 (뜬금없지만 이들 사이에 끼어 있던) 이연걸 같은 이들이 세 편의 영화를 수놓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액션영화 팬으로서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리암 햄스워스, 스콧 앳킨스, 테리 크루즈, 론다 로우지, 글렌 포웰 등 비교적 젊은 스타들이 함께하던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익스펜더블 4>의 라인업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전작 세 편에 출연했던 스타 대부분이 빠졌고, 새로 투입된 메간 폭스나 50센트는 액션스타라는 이름에 알맞은 캐스팅은 아니다. 빌런으로 출연한 이코 우웨이스라던가, 이제는 왕년의 스타라는 수식어가 알맞을 법한 토니 쟈의 모습은 반가웠지만, 할리우드는 언제나 이들의 움직임을 담아내는 방법을 모른다.      

 액션스타라는 동력이 사라진 영화는 빠르게 침몰한다. 1억 달러라는 제작비가 무색한, 처참한 퀄리티의 CGI는 모바일 게임만 못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참고로 1편은 8000만 달러, 2, 3편은 1억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이야기를 기대했을 관객은 없을 테니 넘어가자. 여하튼 <익스펜더블 4>에서 중요한 것은 액션이다. 라흐맷(이코 우웨이스)이 핵 기폭제를 탈취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액션부터 그저 실망스럽다. 배우에 대한 실망은 아니다. 다만 무술가 출신의 배우를 데려와 그가 하나의 동작을 채 마무리하기도 전에 타격의 순간으로 편집하는, 심지어 숏의 각도나 거리가 달라지지도 않는 컷을 보며 일말의 기대감을 내려놓았다. 라흐맷은 뾰족하게 깎은 톤파를 주무기로 사용하지만, 영화 속에서 제대로 사용되지도 못한다. 다른 한편에서의 액션, 바니(실베스타 스텔론)의 부탁으로 깡패들과 싸우는 리(제이슨 스타뎀)는 마치 무쌍 게임에서처럼 너클을 낀 채 제자리에서 주먹만 날린다. 물론 이 장면이 어처구니없을 뿐 스타뎀의 모든 액션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장면과 함께 정면에 기관총이 달린 바이크를 타고 펼치는 액션은 <익스펜더블 4>의 빈곤함을 보여준다.     

 영화의 핵심은 어쨌거나 왕년의 스타들이 맞붙는 것이다. 멜 깁슨과 스텔론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람보와 코만도가 한 팀이라면 어떨까? 장 클로드 반담의 발차기는 여전히 멋있을까? <익스펜더블> 시리즈는 이러한 실없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대답들이었다. 영화가 별로여도, 왕년의 액션스타에게 호응해줄 왕년의 액션 팬들이 있었다. 그들이 보고 싶었던 것은 제이슨 스타뎀과 메간 폭스의 에로틱한 몸싸움이 아니라 과거의 영광을, ‘하드바디’의 신화를 여전히 과시하는 투박하고 거친 움직임들이다. 데뷔작 <액트 오브 밸러>를 통해 밀리터리 영화 팬들에게 나름의 호응을 얻었던 스캇 워프 감독은 데뷔작 이후 번번히 그랬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 재차 실패했다. 스타뎀의 액션은 바로 두 달 전 개봉한 <메가로돈 2>의 하이라이트 액션을 그대로 빼다 박았고, 스텔론은 러닝타임의 대부분 동안 등장하지 않으며, 이코 우웨이스와 토니 쟈라는 무술가의 액션을 온전히 담아낼 역량 같은 것은 이 시리즈 전체에 존재하지 않았다. 노안이 와 제대로 저격하지 못하는 돌프 룬드그렌의 모습만이 소소하게 성공한 유머이자 액션이었달까.      

 <익스펜더블 4>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관이 어느 순간 멈춰 선 것처럼 느껴진다는 지점뿐이다. 영화의 첫 자막은 “리비아, 카다피의 낡은 군수공장”이라는 자막을 띄운다. 모두가 알다시피, 독재자 카다피는 2011년 사망했다. 영화의 배경이 그즈음인 것도 아니다. 핵무기를 훔쳐 미군으로 위장한 뒤 러시아 국경 안에서 터트려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자 하는 무기상이라는 설정 또한 그렇다. 중남미 독재자를 처치한다거나, 변절한 옛 동료와 싸운다는 등 전작의 설정은, 여전히 구닥다리식 이야기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몰역사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왕년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출연진의 면면이 낡은 이야기를 그런대로 지탱했다. <익스펜더블 4>는 하드바디의 재현이 완전히 무의미해진 시대에, 이를테면 드웨인 존슨이나 빈 디젤 같은 동시대의 하드바디 스타들마저 스러져가는 시기에 당도했다. 그렇지 않은가? 존 시나는 액션스타라기보단 코미디스타에 가깝고, 바티스타는 진지한 연기에 뛰어들었으며, 제이슨 모모아는 슈퍼히어로의 길을 택했다. 왕년의 액션스타들, 스크린을 화염과 피로 물들이는 육체들이 설 자리는 그야말로 종말을 맞이했다. <익스펜더블 4>의 의미라면, 2010년대의 시작부터 벌인 하드바디의 귀환에 스스로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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