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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8. 2024

저기의 공동체와 여기의 커뮤니티

<불청객> 이응일 2010

[저기의 공동체와 여기의 커뮤니티]

2월 25일(일) 오후 4시 30분 

참석: 박동수, 배새롬 

예매: https://www.tinyticket.net/event-manager/EM9Lu9GNN0ZA


*2월 25일 인디스페이스 [무명의 비평가들: 아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불청객> 상영을 준비하며 쓴 메모이다

 

 “이 영화를 디씨인사이드에 바친다”. <불청객>은 이 자막으로 시작된다. 2024년의 시점에서 이 자막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디씨인사이드가 만들어낸, 그곳에서 촉발된 온라인 디스토피아는 2010년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한국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이응일 감독은 <불청객>의 개봉이 확정되자 디씨인사이드 영화 갤러리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불청객>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출발점, 엔드크레딧의 ‘그 밖에 고마운 분들’에 디씨인사이드와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서울대 영화 연구회 ‘얄라셩’이다. 이응일 감독은 대학 재학 당시 얄라셩에서 활동했으며, 비디오 캠코더로 촬영한 <진달래>나 <독일어 회화> 같은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불청객>의 크레딧에서 이응일 감독과 같은 시기 얄라셩에서 활동한 이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을 관두는 법>의 안건형은 이응일과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다. <보드랍게>를 연출한 박문칠 또한 촬영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물의 숨겨진 원리>를 만든 조민석과 <애국청년 변희재>의 강의석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다. (영진위 DB에 등록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동명이인인 인물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영화를 만들며, 영화‘계’라는 어떤 장 안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이름으로 가득한 <불청객>의 크레딧은, 지금 시점에서 꽤나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병맛 SF 환타지”를 표방하는 초저예산 가내수공업 영화의 스태프라기엔 초호화 캐스팅에 가깝다.  

 이를 두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불청객>은 ‘영화 공동체’와 ‘영화 커뮤니티’ 사이에서 탄생한 영화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조우한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종종 있었던 일이다. 한국힙합은 90년대 PC통신에서 출발했고, 게이머들은 PC통신을 통해서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는? 80~90년대 대학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등장한 일련의 영화 집단들이 있었고, 그 시초 중 하나가 얄라셩이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닌 오프라인 공동체라는 지점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라는 것과 연결된다. 필름메이커스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영화 인력의 구인구직이 일어나긴 하지만, 여전히 영화 제작은 영화학교나 워크샵을 비롯한 오프라인의 모임에서 출발한다. 그러한 지점에서 PC통신을 통해 모인 영화 애호가들은 영화를 함께 보고 격렬한 토론을 나누었을지언정 함께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공동체로 발전하지 못했다. 2000년 본격적으로 출범한 디씨인사이드는 지금의 오픈채팅방과 다름없던 PC통신의 개별 커뮤니티들을 하나의 온라인 주소지 아래 통합한다. 영화 갤러리는 그중 하나였으며, 이응일 감독은 그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 활동했다.

 <불청객> 전반에 짙게 묻어 나오는, 88만원세대나 3포세대 등의 이름으로 표상되던 ‘잉여 사회’의 감수성은 여기서 출발한다. 여전히 국내 최대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씨인사이드는 당시의 잉여인간 담론을 주도하던 곳이었으며, “아햏햏” 같은 정체도 의미도 불명인 밈은 그것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영화의 주인공 진식은 두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하며 고시를 준비하는 인물이다. 그는 게임만 하는 응일, 소심한 백수 강영과 자신을 구분한다. 공부하는 자신은 쓸모없는 잉여인간인 나머지 둘과 다른 사람이라고. 하지만 갑작스레 자취방을 급습하고 우주로 날려보낸 포인트맨은 진석 또한 그저 사회에 불필요하고 무능한 백수 쓰레기일 뿐이라 일갈한다. 진식과 룸메이트들의 투쟁은 여기서 출발한다. 비록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한 백수 잉여일 뿐이지만, 자신의 거울상과도 같은 포인트맨과 대적하며 그들은 일종의 효능감을 얻어낸다. 진식의 희생으로 지구에 복귀한 응일과 강영은 한화 이글스 모자를 쓰고 자취방 밖으로 나간다. 끝없이 패배하는 사회적 무쓸모의 삶을 살아가지만, 일상과 자연의 풍경을 마주하고 찬 공기에 손 시림을 느끼며 영화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이 영화는 당시의 디씨인사이드를 그대로 영화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의 영화들이 온라인이라는 공간을 다루기 위해 공허한 리얼리즘을 끌어들여 현실의 사건을 영화화하며 실패를 거듭하는 것과 달리, <불청객>은 영화적 환상으로 온라인의 분위기를 영화화해낸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연출자 자신이 몸담았던 오프라인의 영화 공동체를 끌어온다. <불청객>은 저기의 (오프라인) 공동체와 여기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에서, 그 사이를 오가던 사람의 손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다. 공동체는 흩어지고 커뮤니티는 분화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불청객>은 2000년대를 갈음하는 시대특정적 작품으로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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