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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3. 2024

보기와 보지 않기

<알레고리, 잇츠 낫 미> 2024

 알리체 로르바케르와 JR이 공동연출한 <알레고리>와 레오 까락스가 연출한 <잇츠 낫 미>, 두 편의 단편영화가 묶여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둘 중 어떤 영화가 먼저 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영화는 서로에 대한 답변처럼 느껴진다. <알레고리>의 주인공은 한 소녀다. 무용수 엄마가 찾아간 오디션에서, 레오 까락스가 연기하는 무대감독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이야기를 소녀에게 들려준다. 오디션이 진행되는 동안 극장 바깥으로 나간 소녀는 "벽보 금지"라는 문구가 쓰인 벽을 찢어내고 감춰진 이미지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소녀는 그 이미지가 된다. 영화는 내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고개를 처박고 주변을 바라보지 않는 행인들을 비춘다. '동굴의 비유'는 대상의 원본, 즉 이데아가 아닌 그것의 그림자만을 볼 뿐이라는 비유다. 그림자는 무용수의 춤처럼 종종 매혹적이지만, 그것은 어쨌거나 실제가 아니다. 로르바케르와 JR은 마치 스마트폰이 그 대상인 것처럼 다룬다. 눈앞의 벽에 거대한 이미지가 붙어 있어도 자신의 스마트폰만을 바라보는 사람들, JR 특유의 사진 작업 방식은 <얼굴들, 장소들>에서처럼 눈길을 사로잡으려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동굴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영화는 '동굴의 비유'가 그림자를 가능케하는 광원, 동굴의 바깥이 있음을 전제한다는 것에 집중한다. 극장을 빠져나가 이미지를 발견하는 소녀의 모습, 그리고 그 소녀를 따라 이미지들을 바라보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러한 전제와 곧장 연결된다. 

 <잇츠 낫 미>는 마치 고다르의 후기작을 연상시키는 듯한 방식으로 (까락스는 <이미지 북>의 고다르처럼 계속 기침한다) 제작되었다. 프랑스 국기의 색을 가져온 볼드체의 자막, <나쁜 피>나 <홀리 모터스> 등 까락스 자신의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영화, TV쇼, 뉴스 등에서 발췌한 이미지, 자신과 반려동물, 딸 등을 홈무비처럼 촬영한 푸티지, 여러 회화의 이미지 등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사라지곤 한다. <잇츠 낫 미>에서 까락스는 자신의 이미지가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까락스 자신이 아니라 그의 기계적 복제 이미지일 뿐이다. 동시에 그 이미지들은 왜곡된다. 색조가 뒤바뀌고, 일그러진다. 까락스는 너무 많은 이미지가 우리의 시각을 포화상태로 만든다고 주장하는 것만 같다.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카메라가 열어준 새로운 시각과 그것의 혁명성을 찬양하지만, 까락스가 가져온 이미지들은 몽타주되길 거부하고 파편적 이미지의 집합에 머문다. 까락스는 자신이 보고 싶은 이미지들을 모으고 촬영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게 모인 이미지는 까락스를 구성하면서도 까락스 자체로는 제시되지 못한다. <알레고리>가 다룬 동굴의 그림자들이 그렇듯 말이다. 그렇기에 까락스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자장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눈을 감아야 한다. 혹은 잠시나마 눈을 감을 줄 알아야 한다. 라고 까락스는 말한다.

 까락스의 요구는 <알레고리>와 <잇츠 낫 미> 모두에 해당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흘려보내며, 너무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보기'의 흐름 속에 성찰과 숙고의 시간은 없다. 까락스는 몇 년 전 유럽 해안에 떠밀려 온 난파된 난민선과 어린이의 시체를 꽤 길게 보여준다. 이미지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 대신, 그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이는 <잇츠 낫 미>라는 영화 전체에서 꽤나 튀는 순간이다. 그는 고다르처럼 여기와 저기를 접붙이는 그리고(et)로서의 몽타주를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보아야 할 이미지를 충분히 길게 보여주고, 종국에는 잠시간 눈을 감길 청한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눈을 감으면 우리는 동굴의 그림자조차도 보지 못할 뿐이다. 영화가 공개된 시점(국내의 내란 정국)과 아무래도 연결 지어 생각되기에 제기하는 문제이지만, 우리는 결국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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