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상반기가 일주일 정도 남았지만 쓰는 정리... 정리에 넣을 별다른 원고 발표나 행사는 없기에...
7월
기획위원으로 3년 째 참여하고 있는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3학년 2학기>의 리뷰와 모더레이터를 맡았다. 올해 무주산골영화제 심사에 참여하며 처음 본 영화인데, 심사 과정에서 <에스퍼의 빛>과 함께 끝까지 고민하게끔 했던 영화. 강력한 정공법의 영화였고, 이란희 감독의 가장 완성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의 독창성은 노동영화임에도 그간 한국에서 제작되어 온 노동영화에서의 방식을, 투쟁, 대립, 차별, 구별과 같은 이분법을 채택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의 무용함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독립영화 쇼케이스를 통해 공유된 리뷰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3학년 2학기>는 위험한 현장과 과중한 노동에 내몰리게 된 현장실습생의 모습을 담아내지만, 위험과 과로를 스펙터클로 담아내길 정중히 거절한다. 익숙한 갈등 구도를 끌어와 관객을 주인공의 편에 서게끔 하는 전략도 거부한다. 대신 영화는 언제고 어떤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협적인 상황을 곳곳에 집어넣는다. 하역장에 있어야 할 추락 방지 장치가 없고, 그라인더로 인한 사고를 방지해줄 가죽 치마도 없다. 언제고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의례적으로 사고 예방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관리자는 그것을 회피한다. 과중한 노동과 그로 인한 피로는 특별근무 수당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
그럼으로써 <3학년 2학기>는 노동하는 청소년이자 사회초년생의 얼굴을 우직하게 목격하는 영화임과 동시에,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노동현장'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심리적 서스팬스의 영화가 된다.
시네마테크KOFA에서 황민진 프로그래머의 기획으로 진행된 [영화로 영화쓰기] 기획전에서 백종관의 <이빨, 다리, 깃발, 폭탄(2025 Edition)과 권희수의 <임계> 라이브 스크리닝 이후 진행된 토크에 참여했다. 사실 두 작품이 어떤 연유로 묶여 상영되게 되었는지 (프로그래머님께 듣긴 했지만)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한 상태로 토크를 준비했다. 한쪽에는 감독이 일상 속에서 채집한 이미지와 (라디오) 사운드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디지털 영사 기술을 해킹하고 뭉그러뜨리며 벌어지는 오작동하는 이미지들이 있다. 전자가 우연히 채집된 오디오-비주얼의 12음계 기법이라면, 후자는 조작되고 변형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오디오-비주얼의 잼(jam)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우연성'을 키워드 삼아 토크를 진행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8월
올해의 두 번쩨 심사... 서울국제대안영상페스티벌(네마프)의 글로컬단편 부문을 임정서 작가님과 함께 심사했다. 폭염이 시작되던 시기에 상상마당을 오가느라 여러모로 고생했지만, 올해 경험한 다른 영화제 심사들에 비하면 비교적 단출한 일정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었다. 14편의 작품 중 수상작은 튀르키예와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피라트 위첼의 <해피니스>였다. 스마트폰이나 맥북 등의 화면 녹화로 구성된 데스크톱 시네마인 이 작품은 '불면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학살을, 그리고 그것들을 목격하게끔 하고 행동하게끔 하며 잠들지 못하게 하는 소셜미디어, 나아가 그것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약물에 내포된 자본-제국주의적 함의를 밀도 있게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심사평에도 적었지만 올해 네마프 슬로건인 '디지털 무빙이미지 윤리학'과 잘 맞닿기도 했고, 지난 1년 동안 내란을 겪은 입장에서 크게 공감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시네마테크KOFA의 여름기획이었던 [경계를 감각하라!: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의 쾌락과 불쾌, 그 이후] 중 마리나 드 반의 <인 마이 스킨> 4K 복원판 상영 이후 <밤의 문이 열린다>의 유은정 감독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감독이나 제작진, 배우가 아닌 분과 함께 하는 토크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던 터라 여러모로 긴장되기도 했고... <인 마이 스킨>은 존재는 알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관람한 작품인데,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로 묶이는 여타 작품들과 굉장히 다른 질감과 지향의 영화로 여겨졌다. 자해를 통해 모종의 해방감을 느끼는, 감독 자신이 직접 연기한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는 얼핏 줄리아 뒤쿠르노의 영화들이나 <칼+하트>처럼 익스트리미티를 퀴어성을 중심으로 풀어낸 작업과도 결이 조금 다르다. 함께 상영된 다른 영화들에서 상해(혹은 죽음)의 대상은 언제나 타인을 향해 있다. 헌데 이 영화에서 몸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며 고통을 느끼는 존재는 오로지 주인공뿐이다. 마리나 드 반 또한 인터뷰나 대담 등에서 이 영화가 '뉴 프렌치 익스트리미티' 혹은 바디호러로 묶이는 것을 탐탁치 않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감독이 실제로 우울증과 자해 등의 증상을 가졌던 경험에 바탕한 영화이기에, 이 영화는 세계의 무의미나 아노미 상태를 극단적인 폭력성의 형태로 드러내고자 한 다른 영화들과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다. 토크 때에도 이 작품이 함께 기획전으로 묶인 다른 영화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이런 도전적인 기획전을 공공기관에서 수행하신 박세호 프로그래머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응원을...
https://blog.naver.com/mujufilmfest/223983689681
무주산골영화제 블로그에 영화평론상 수상작인 <에스퍼의 빛> 비평이 게재됐다. 영화제에서 심사에 참여한 세 명의 평론가에게 심사대상작 중 (수상작을 포함해) 한 편씩 비평을 맡기는데, 나는 올 한해 여러모로 많이 관람하고 또 이야기하게 된 <에스퍼의 빛>에 관해 썼다.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 속 '아이들'이 디스플레이에 접촉하는 장면들이다. (나중에 정재훈 감독에게 들은 것이지만) 화면 밝기를 올려, 마치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선택받은 아이들이 디지털 세계로 뻘려들어갈 때의 PC 화면처럼 새하얗게만 보이는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화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새하얀 화면을 두고 그 양쪽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세계(현실과 자캐커뮤를 통해 생성되는 세계)가 양립하는 감각, 그리고 그것을 상대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사람들의 감각이 드러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랄까. 다시 읽어보니 어쩌면 그 감각을 길게 해설하고자 시도한 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IDF에서 피오트르 비니에비치의 <그를 찾아서> 상영 후 '다큐멘터리 창작 속 AI 활용법'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토크에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AI 영상제작자인 구도형 대표와 AI를 비롯한 미디어 콘텐츠 전반을 연구 및 창작하시는 오영진 교수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오영진 교수님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알게 된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 (심지어 대학원에 출강도 하셨는데) 직접 뵌 것은 처음이었다. <그를 찾아서>는 흥미로운 다큐-픽션,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작년 IDFA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나름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이 작품은 "4~500년이 지나도 컴퓨터는 내 영화 같은 것은 못 만든다"는 베르너 헤어조크의 말에서 출발한다. 감독과 제작자는 카스파(kaspar)라는 AI 모델에 헤어조크의 영화와 인터뷰, 비평 등을 학습시키고, AI 카스파와의 대화를 통해 영화를 만들기를 시도한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가상의 동유럽 지역과 가상의 인물, 가상의 사건이 등장하고 헤어조크 특유의 냉소적인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 초반부는 얼핏 '헤어조크풍'의 다큐멘터리를 나름 괜찮게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영화가 진행될 수록 이야기는 초현실적인 영역으로 이어지고, 감독은 카스파에게 "어떻게 결말을 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털어놓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AI의 머신러닝이라는 성격을 경유해 제작된 헤어조크 팬 무비임과 동시에, 'AI를 통한 창작'이 마주하는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괴작인 셈이다. 아무래도 이 작품 자체가 AI를 도구적으로 사용했다기보단 공동창작의 파트너에 가까운 형태였기에 '다큐멘터리 창작 속 AI 활용법'이라는 제목에 맞는 토크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AI 이후의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졸업식 했다... 졸업식 다음 날 곧장 학교도서관 로그인 막고 몇 달 뒤에 학교 지메일 계정 막아서 포켓몬고 부계정 날려먹은 학교 놈들아...
9월
인디스페이스의 여름 기획으로 꾸려진 음악영화 기획전에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2017년 전주에서 처음 본 이후로 여러 번 다시 본 영화였는데, 8년이 지나고 이 영화의 토크를 진행하게 딜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 당시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았다는 이유로 기소된 정윤석 감독(토크 당시에는 1심 판결 전이었다)과 함께 하는 자리여서 그런지 나름대로 긴장되는 자리였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에서 박정근 씨가 처하게 되는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이 현재 정윤석 감독이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사법부가 주장하는 법의 일관성이라던가 하는 것들 따위를 보존하기 위해 진행되는 재판인 셈이니까. 지금의 시점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의 세 번째 심사. 이선필 기자, 나라카와 아야 작가와 함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상 심사를 맡았다. 영화제에 출품된 14편의 한국 장편 신작이 대상이었다. 예술상, 연대상, 신인감독상을 각각 <지금, 녜인>,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 <도라지 불고기>에게 수상했다. 애정하는 영화제이지만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일정 전체를 소화한 것은 처음이었던 터라,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심사였다. 더불어 보고 싶었던 무수한 작품과 대담, 포럼을 놓치게 되어 무척 아쉬웠다. 다른 한편으로 한 국가에서 생산된 영화 십수 개를 몰아 본다는 것은 역시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수상작 외에도 홍진훤의 <오! 발렌타인>이나 설수안의 <마당이 두 개인 집>, 임수빈의 <흔들리는 사람에게>와 같은 영화들을 볼 수 있어 다행인 시간이었다. 수상작 세 편을 포함에 글에 언급한 영화 모두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들이니, 기회가 온다면 다들 꼭 보시면 좋겠다.
7월부터 전북독립영화제 예심에 참여하고 있었다. 수백편의 영화를 몰아보는 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한 해 동안 쏟아져 나온, '독립영화'로 카데고리화되는 영화들을 몰아 볼 수 있다는 점은 어쨌거나 행운에 가깝다. 물론 무수한 영화들 중 정말로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는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예심을 경험해본다면 알게 되겠지만, 영화제에 상영되는 작품은 (특히 단편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만약 영화제를 찾아 관람한 단편 섹션이 성에 차지 않았다면, 사실 그것은 그 해에 제작된 단편들이 그 정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도 좋겠다. 심사 중 정말로 마음에 들었던 (상영된) 추천작을 몇 개만 적어보자면 <부력>(박배일, 2025), <퍼니스트 홈비디오, 코리아>(김국희, 2025), <웰컴 투 마이홈>(박슬희, 2025)이다.
석사논문 "여전히 영화를 '트는' 사람들 - 디지털 시대 영화문화에서 자유 상영 실천에 관한 연구"가 RISS에 업로드되어 온라인 공개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적었으니 패스.
10월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b72f2b65-c3aa-4405-bf9b-268bd3bd8caf
게임제너레이션에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라는 글을 기고했다. 편집장님이 자유주제로 원고를 부탁한 김에, 올해 초 소리그림에서 진행했던 세미나 당시 정리했던 내용을 확장한 원고를 써 보았다.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어쨌거나 '소고'이기에 특정한 결론을 향하는 글은 아니다. 다만 시네마테크KOFA나 MMCA,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지에서 별도의 머시니마 기획전이 진행되거나 영화제나 갤러리 등지에서 상영 및 전시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기에, 그것들을 지켜봐 온 입장에서 갖게 된 의문들에 대해 자문자답하는 글이 된 것 같다. 소리그림에서의 '게임과 영화 사이 세미나'에서 출발한 글들이 유독 많은 것 같은 한 해다.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심사에 참여했다. 앞서 전북독립영화제 예심에 참여한 덕분일까, 겹치는 영화가 많아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진행했다. 지난 1년 동안 영화제나 개봉 당시 상영을 놓친 영화들을 볼 수 있어 기대보다도 즐겁게 심사를 진행했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8684
<8번 출구>의 개봉을 맞아 진행된 [씨네21]의 게임 원작 영화 기획 지면에 글을 하나 보냈다. 참고로 "밀레니얼의 문화 코드를 노려라"라는 제목은 편집부의 선택이다... <명탐정 피카츄>와 <슈퍼 소닉>을 기점으로 다시금 흥행 궤도에 오른 지금의 게임 원작 영화들이 과거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것들의 경향과 함께 제작 예정인 영화들을 소개하는 글이다. 원고청탁을 받을 때에도 건조한 톤의 글을 요청주셨기에 미쳐 풀지 못한 이야기가 많았다. 다행히 그 아쉬움은 다음 달에 해소가 되는데...
11월
김유민 감독의 첫 장편 <바얌섬>의 GV를 진행했다. 사극에 도전한 독립영화라는 점에서도 궁금했던 영화였는데, 마침 한독협 운영위원을 함께 하고 계신 감독님께 잠깐잠깐 들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정말 흥미진진해 더욱 궁금했었다. 제작진이 무인도나 다름없는 인천 사승봉도에 3주 동안 들어가 촬영한 이 영화는 여러모로 영리하다. 사극임에도 초가집이나 기와집, 궁 등의 건물이 일체 등장하지 않는 배경인데다가, 의자나 식탁과 같은 문명의 흔적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제작지원을 받지 못한 채 만들어진 영화로써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거북선을 타다 난파되어 무인도에 표류한 세 남자의 이야기'라는 로그라인 안에서 매끄럽게 소화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최근 지원사업의 바깥에서 자신이 손에 쥔 재료들로 극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박송열, 이종수, 김준석 등이 떠오르는...) 대부분이 일상적 영역을 택한다면, <바얌섬>은 그와 유사한 상황을 정반대의 방식으로 극복해낸 사례랄까. 이러한 영화 외적인 맥락 외에도, 얼핏 <전설의 고향>이나 전래동화를 연상시키는 영화의 판타지적 흐름이라던가 충청도 사투리가 자아내는 분위기 등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다. '한국 독립영화'라는 영역 안에서도 정말 드문, 그리고 성공적인 시도. 게스트가 많은 자리라 토크가 금새 끝나버린 기분이라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게임 개발자이자 영상제작자인 멜트미러 작가와 함께 <에스퍼의 빛> 토크를 진행했다. TRPG의 성격을 일정부분 갖는 자캐커뮤가 영화의 중심이기에,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실제로 TRPG를 제작하기도 했던) 멜트미러 작가와 나누는 것 자체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게임을 다루는 영역의 분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구현된 자리였달까. 더불어 한 해에 같은 영화로 두 번 토크를 하게 된 것도 재밌었다.
올해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심사. 부산독립영화제 심사를 다녀왔다. 안건형, 오정석 감독과 함께 진행했고, 두 분의 영화를 좋아하기에 뵙고 싶었던 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여 즐겁게 일정을 소화했다. 부독제는 여타 지역 독립영화제와 달리 영화제의 메인인 경쟁부문(메이드 인 부산)의 출품기준이 ”1년 이상 부산에 거주주 중인 창작자“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1년‘이라는 기준은 부산에 내려온 창작자의 ’서울영화‘가 ’부산영화‘로 둔갑하게 되는 경우들을 발생시키지만, 대부분이 지역영화 공모를 별도로 진행하고 경쟁부문은 전국단위 공모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역‘독립영화제임에도 프로그램의 가장 큰 부분인 경쟁부문이 비슷비슷한 영화와 비슷비슷한 수상결과로 이어진달까. 부독제는 일종의 정면돌파를 택한 셈이다. 특히나 영화들의 크레딧을 보며 부산에서 영화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미디어인프라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정면돌파'라곤 했지만, 영화/영상 학부가 4곳이 밀집한 지역이기에 양적인 접근이 가능하기도 한 셈이니까. 수상작으로 선정한 영화 중 임지훈의 <유령>은 다른 영화제나 상영회에서 보실 수 있다면 꼭 챙겨보시길 권한다.
한국영상자료원 KMDB를 통해 공개되는 '사사로운 영화리스트'에 참여했다. 매번 관객의 입장에서 기대하던 리스트에 직접 참여하게 되어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영화들을 고를지 고민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즐거웠다. 올해 영화제를 다니며 익숙하고 잘 알려진 것들보단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국가의 영화들을 챙겨보고자 했는데, 결국 리스트 중 4편이 미국영화인 것을 보니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했던 것 같다. 올해는 여러 심사들을 하며 원하는 스케줄로 영화를 관람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10월 말에 갑자기 교수님께 전화가 와서 얼떨결에 학회 발제를 하게 되었다.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 학회 중 "게임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주제로 한 넷마블 후원 세션에서 "게임-영화에서의 스토리텔링 변화: 미디어환경 변화 속에서의 게임 원작 영화 내러티브에 대한 가설"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진행했다. 올해 초 소리그림에서 진행한 세미나부터 게임제너레이션이나 씨네21 원고까지 게임과 결부된 영화들에 관해 여러 차례 말과 글을 나눌 자리가 있었는데, 그것을 한 차례 마무리 짓는 느낌이었달까. 발제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어느덧 30년이 누적된 게임 원작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단순히 게임의 외피를 (액션, 호러, 미스테리, 크리처, 좀비 등) 이미 성공한 영화 장르에 덧씌우는 기존의 OSMU 방식에서, 헨리 젠킨스가 주창한대로 향유자 경험이 중심이 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탈 컴뱃>이나 <스트리트 파이터>, <툼 레이더> 등 초창기 게임 원작 영화에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나 <어쌔신 크리드>, <위쳐> 같은 비교적 근작들까지가 전자의 모델을 따른다면, 다시금 게임 원작 영화의 붐을 일으킨 <슈퍼 소닉>,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마인크래프트 무비> 등 내러티브의 비중이 낮거나 부재하는 게임 원작의 영화들이 향유자 경험을 영화화에 결부시키며 그것을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모델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요지다. 과거의 게임 연구에서 '매직 서클'이 게임-하기를 통해서만 구성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e-스포츠와 스트리밍을 거치며 게임-보기로 확장되었고, 지금의 게임 원작 영화(발제에 넣진 않았지만 게임 소재의 영화들 또한)는 확장된 매직 서클의 영화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개념이 (젠킨스가 제시했던 향유자 경험과 팬덤 실천에 대한 주목이 아니라) 영화/TV/게임/플랫폼 등 미디어 기업의 전략으로 중심이 옮겨간 이래로 제대로 포착하는 데 실패했던 지점들이랄까. 넷마블 후원세션이라고는 하지만 기업의 콘텐츠 개발 전략 지침 같은 느낌이 아니기를 바랬다. "게임 원작 영화, 게임-영화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단지 세계관의 확장일뿐 아니라 스트리머와 수용자의 액션-리액션으로 구성되는 매직 서클의 확장"이라는 결론도 이런 맥락에서 출발했다. 사실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로 들어가 급하게 발표를 마무리 지었는데, 토론자로 오신 이상규, 이수엽 선생님과 사회를 맡은 박근서 선생님이 모자란 발표에서 주목하고 덧붙여 주신 지점들이 있어 나름 잘 마무리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박근서 선생님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가 제시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다른 방식의 이론화(월드-빌딩이나 게이미피케이션 등 기존 이론을 활용하건 새로 제시하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크게 동의하는 지점이었다. 게임 원작 영화가 제작되고 수용 및 향유되는 지점을 명확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원작'인 게임의 성격부터 그것이 향유되는 미디어 환경, 나아가 그것이 영화의 제작과 수용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은 극히 적은 지점만을 다룰 수 있을 뿐임을 확인하는 시간과도 같았다.
12월
11월에 공개된 글들이지만 서독제 GV일정이 12월이라 12월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킥보드를 부순 자>, <경계와 사이>, <당신의 집으로>, <층> 등 5편의 프로그램노트를 썼고, 4번의 GV를 진행했다. 영화제에서의 GV야 30분 내외의 짧은 시간과 (단편섹션 특유의) 많은 게스트 때문에 이렇다 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없었지만,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의 GV 진행을 위해 극장에 들어갈 때 객석의 절반이 현직 평론가들로 채워져 있던 풍경은 어쩐지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소재와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많지만, 아무래도 영화제 GV라는 성격 내에서 그것을 소화하긴 어려울 것 같아 몇 개의 질문을 전달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다. 그나저나 GV도 그렇고 체력이나 다른 개인사로 인해 서독제에서는 계획만큼 영화를 많이 관람하진 못했다.
https://www.kmdb.or.kr/story/9/9352
사사로운 영화리스트 원고가 KMDB에 올라왔다. 리스트로 제출한 10편 중 어떤 영화에 대해 쓸지 여러 고민을 했다. 최종적으로 <베이비 인베이전>과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 중 한 편을 쓰자고 마음 먹었는데, 전자에 대해 제대로 쓰기에는 생성형 AI에 대한 공부도 부족하고, 하모니 코린의 지난 작업들을 되짚어 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대신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을 중심으로 올해 국내에서 여러 형태로 상영된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했다. 2008~2010년 사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예닌 지역에서 진행된 극장 재개관 프로젝트와 영사기사 후세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다큐멘터리는 각별하다. 디지털 전환기의 필름 영사기사라는 포인트와 팔레스타인의 현대사가 영화의 두 축을 이루며 서로에 대한 흥미로운 은유로 작동하는 영화랄까. 글에서 잘 설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만 상영되었는데, 또 상영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애인과 함께 준비한 상영회. 키니마를 대관하여 진행했다. 언젠가 사람들을 모아 쿠소영화를 상영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그걸 현실화할 수 있어 즐거웠다. '리액션 상영'이라고 강조한 만큼 상영회를 찾아주신 분들의 웃음과 박수로 가득한 상영이었던 터라, 이미 여러 번 관람한 <샤크네이도 2>였음에도 이번이 가장 즐거웠다. 특히나 영화의 주요 포인트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다른 분들의 리액션을 기대하게끔 하는 장면 마다 속으로 미리 웃고 있었달까. 상영 후 토크에서는 "왜 쿠소영화를 보는가"와 "왜 상어영화인가"라는 두 개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꾸렸다. 여러모로 비약과 뇌피셜로 점철된 토크였지만, 기대보다 토크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만족스럽다. 토크 내용은 이후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예정...
마무리는 2025 음악 탑스터로... 올해는 많이 못 들어서 64개.
올해 상반기(https://brunch.co.kr/@dsp9596/1224)가 논문과의 사투였다면, 하반기는 프리랜서 영화평론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테스트해보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길게 늘어 놓은 일들만으로 생계를 (유지는 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꾸리기는 아직 어려운 형편이라, 내년 한 해의 결과가 여러모로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바쁜 듯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느낌이랄까... 다양한 고비들이 찾아온 한 해였다. 그래서 올 한 해 했던 일들을 되돌아 보는 게 중요한 시간이다. 일주일 남짓 남은 2025년은 그런 생각들로 보낼 예정이다.
심심하신 분들은 트리에 코멘트 부탁…
https://colormytree.me/2025/01HGGE7VZQRHCSJNRNF6ZHV3N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