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31

1. 샘 레이미의 신작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그의 필모를 긁어 모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이블 데드>의 고립된 환경, <드래그 미 투 헬>의 일상상,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의 CGI 배경,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레이첼 맥아담스... <이블 데드>가 나온지 어느덧 45년이 흘렀고, 샘 레이미는 여전히 그때 당시의 감성으로 영화를 만든다. 이토록 일관성 있는 장르영화 작가가 있었나? <직장상사 길들이기>에서 맷돼지를 사냥하는 린다, 상사 브래들리와 대결하는 린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자신을 붙잡는 사람을 상대하는 린다의 모습은 얼핏얼핏 <이블 데드>의 애쉬를 떠올리게끔 한다. 물론 이 영화에는 악령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도, 거미줄을 쏘거나 마법을 부리는 초능력도 없다. 초능력이라면, 미국의 오래된 예능 [서바이버]에 출연하고자 생존능력을 갈고 닦은 린다의 지식이랄까. 진지한 생존 드라마가 아니라 위계적 폭력의 갈등과 전복을 소재 삼은 장르영화이기에 가능한 즐거움이 이 영화엔 빼곡히 박혀 있다. 고약한 악동이라기엔 젊잖고 장난기 가득한 소년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그의 21세기 블록버스터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 던 심술궂은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레이첼 맥아담스는 그 심술을 훌륭하게 스크린에 옮겨 온다.


2.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장편 데뷔작 <물의 연대기>는 제목과 달리 연대기(chronicle)적 시간성을 다루지 않는다. 다섯 개의 챕터로 구성된 영화의 플롯은 넓게 보면 연대기적 순서를 따라가지만, 반대로 개별 챕터 안의 이야기는 연대기라기보단 불쑥불쑥 기억을 급습하는 폭력적 트라우마로 도배되어 있다. 첫 챕터에서 숨기지 않고 보여주듯, 영화는 '연대기(chronology)'라는 제목을 받아들이면서도 계속해서 배반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연대기적으로 리디아의 삶을 구성하고자 하지만 그의 뇌에 새겨진 트라우마는 정신병에서 말하는 '삽화'처럼 이미지로 그의 기억에, 영화의 스크린에, 사운드로 스피커에 출몰한다. 연대기는 특정한 결론을 향해 모든 시간을 귀속시키는 서술이다. 반면 연대기에 반하는 서사 쓰기는 그것에 저항한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연대기적 시간성과 상관없는 이미지는 단지 연대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리디아가 경험한 시간의 종착지를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시키길 거부하는 이미지의 연쇄로 이어진다. 물론 필름룩(실제로 필름 촬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의 인스타그래머블하고 핀터레스트에 올라올 것 같은 미감의 향연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첫 연출작인 단편 <컴 스위>은 그러한 혐의를 짙게 갖지만, 그의 첫 장편은 리디아 유크니비치의 원작을 오디오-비주얼로 옮겨 오는 가장 유의미하고 정확한 방식을 택한다. 미감의 자랑이라기보단 스스로의 성실함, 이를테면 샹탈 애커만이나 제인 캠피온, (행복이나 희망을 덜 말하는) 아녜스 바르다, 샐리 포터, 일디코 앤예디 같은 인상을 주는 순간부터 셀린 시아마, 데니스 감제 에르귀벤, 샬롯 웰스, 제니퍼 켄트와 같은 비교적 최근 이르는 여성 영화감독의 이미지들을 성실하게 보고 공부한 티가 나는 영화랄까나.


3. <하우스메이드>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던 폴 페이그의 최근 필모그래피 중 그래도 가장 즐거운 영화였다. 물론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한 플롯 트위스트와 (나름대로의) 서술트릭이 쓰이지만 말이다.


4. 마블의 새 드라마 <원더맨>은 애플TV+의 <더 스튜디오>나 아마존프라임비디오의 <더 보이즈>를 연상시키는 지점이 빼곡하게 차 있다. 작품 안에서도 다른 OTT 플랫폼의 이름이나 작품을 서슴치 않고 언급한다. 문제는 일종의 대체현실로 존재하는 MCU 세계관 안에서 그것이 소화될 때의 어색함, 이를테면 무수한 슈퍼히어로가 수십년 째 활동하고 있는 <더 보이즈> 세계관에서 <매트릭스>가 주요한 대중문화 레퍼런스로 언급될 때의 어색함이랄까. <원더맨>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애플TV+의 <세브란스: 단절> 정도이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더 보이즈> 속 <매트릭스>가 해당 세계관만으 독자적인 <매트릭스>, 이를테면 네오가 예수가 아니라 슈퍼히어로에 비유되는 방식의 작품이라고 괜히 상상해보는 것처럼, <원더맨>에서 언급된 <세브란스: 단절>이 스칼렛 위치의 세뇌와 같은 장치를 도입한 무언가로 상상해볼 수는 있겠다. 저 세계에도 그런 작품이 있다고 가정하고 가급적 긍정적으로 상상해본다면 말이다. 아쉽게도 이들 드라마에선 그 대상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시청자를 위한 편의상의 예시로써 그것들을 가져올 뿐이다. 나는 슈퍼히어로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VFX를 동원한 초능력이나 초현실적인 심리드라마가 해당 세계의 관객/시청자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원더맨> 속 트래버 슬래터리의 이야기엔 몰입할 수 있지만, 정작 사이먼 윌리엄스의 이야기에 좀처럼 집중하기 어렵다. 이런 식의 감상이 별로 유익하진 않을 수 있겠지만, 어딘가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덧붙여, 데미지 컨트롤이 어정쩡한 빌런으로 나오는 것도 굳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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