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로 이후 가장 흥미로운 좀비 시리즈

<28년 후: 뼈의 사원> 니아 다코스타 2026

다소 아쉬운 후반부를 선보이지만, 리메이크 <캔디맨>은 흑인 슬럼에서 탄생한 도시괴담이 백인 인류학자에 의해 전유되며 코스믹호러적이면서도 슬래셔적인 빌런으로 재탄생했던 원작을 뉴욕 흑인의 이야기로 적절히 옮겨오고자 하는 시도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니아 다코스타는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저에산 장르영화/아트하우스 감독들이 으레 걷는 길, MCU에 포섭된 뒤 커리어 최악의 작품을 내놓는 길로 향하게 된다. <더 마블스>는 다방면에서 최악이었다. 세 명의 주연을 오가는 설정은 액션 세트피스 하나 정도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산만하며, 불필요한 캐릭터들의 등장이나 웃기지 않는 농담으로 가득했다. 스튜디오에 의해 망쳐진 니아 다코스타의 커리어는 다시금 장르영화로 돌아왔다. 물론 <더 마블스>가 케빈 파이기의 손길에 의해 대차게 망가졌음이 명백하더라도, 오랜만에 돌아오는 시리즈의 후속작이 그에 손에 맡겨지는 게 영 탐탁치 않던 사람들이 많았을 테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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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가 멋지게 되살린 시리즈의 중간다리가 되어줄 <28년 후: 뼈의 사원>은 여러모로 잘 빠진 영화다. 전작도 그러했지만, <28일 후> 초반부에 등장하는 황량한 런던의 이미지나 속편 <28주 후>의 박진감 넘치는 오프닝과 거대한 스케일의 후반부 등과 비교할 수 있을 스펙터클은 없다. 게다가 아이폰15 프로 맥스로 촬영된 <28년 후>와 달리, 이번 영화는 업계 표준이라 할 수 있을 아리 알렉사로 촬영되었다. 이미지적으로 특별한 시도를 했다기에는, DV캠으로 찍은 <28일 후>나 16mm 필름을 35mm와 섞어 사용한 <28주 후>와도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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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더이상 생존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생존을 위한 로드무비였던 첫 편, 일종의 탈출극인 두 번째 편, 그리고 생존을 위한 발버둥 끝에 찾아온 죽음과 애도를 이야기하는 세 번째 편. 이번 영화에서 생존은 디폴트다.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한편으로 위협적이지 않다. 전작에서 사람들의 척추를 맨손으로 뽑아 올리던 알파 좀비 삼손(차 루이스 패리)은 스스로를 아포칼립스의 공공의사라 말하는 켈슨(랄프 파인즈)에 의해 길들여지고, 심지어 조금씩 감염상태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지미(잭 오코널)이 이끄는 사탄주의자 그룹에 얼떨결에 속하게 된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는 감염자도 아니고 생존자들에게 '자선'이라는 이름으로 고문과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그룹에서 위협을 느끼고 탈출을 꿈꾼다. 아포칼립스가 다가오는 시점의 이야기가 아닌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가 으레 그렇지만, 여기서 좀비보다 무서운 것은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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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사탄숭배를 주요한 모티프로 끌어들이기도 하지만, <28년 후: 뼈의 사원>은 결국 믿음의 문제다. 그것이 아직 남아 있는 녹지에 대한 믿음이건, 메시아적 구원자에 대한 믿음이건, 식량이나 무기 등 남아 있는 자본화된 자원에 대한 믿음이건 말이다. 니아 다코스타와 (이번에도 역시나) 각본을 맡은 알렉스 가랜드는 그러한 믿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러한 믿음, 안전한 공간이나 구원자나 자원에 대한 믿음은 생존으로 이어지는가? 사탄주의 그룹의 리더 지미는 그에게 의심을 품은 지미 잉크(에린 켈리먼)에게 사탄의 현현으로 포착된 켈슨과 대화를 나눈다. 지미의 목적은 구성원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일종의 역할극을 제안하는 것이었지만, 무신론자인 켈슨과 사탄주의자 지미의 대화는 퍽 흥미롭다. 지미는 왜 사탄이라는 존재를 믿게 되었는가? 심지어 그는 교회 성직자의 자녀임이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물론 전작을 유의깊게 본 사람이라면 오프닝에서 등장한 어린 소년이 지미임을 알고 있을테다. 교회 옆의 집에서 동년배 아이들과 '텔레토비'를 보다 몰살당하고, 홀로 겨우 살아남은 소년. 영화 내내 그가 말하는 것처럼 '악마'들이 땅에 내려온 그날 성직자인 그의 아버지는 이를 심판의 날로 받아들이며 감염과 죽음을 구원으로 여긴다. 흥미롭게도 지미의 아버지는 지미와 달리 사탄숭배자는 아녔던 것으로 보인다. 딱히 그의 행동이나 대사, 교회의 이미지에서 사탄주의의 흔적을 찾을 순 없으니까. 아버지가 준 십자가 목걸이를 거꾸로 매달고 다닌 것은 지미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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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켈슨은 감염자건 생존자건 그들의 시신을 거두고 화장해주는 인물이다. 화장하고 나온 뼈를 쌓아 그는 '뼈의 사원'을 만들었다. 물론 켈슨은 그곳을 단순히 납골당이라 부르지만. 무신론자이자 이성적 과학의 신봉자로서 켈슨에게 감염자와 생존자는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소통의 대상인지 아닌지만이 중요하달까. 전편에서도 '미친 사람' 취급 받았던 그는 알파 좀비인 삼손과 어울리고 있다는 이유로 사탄 취급 받는다. 그의 이성 속에서 믿음의 문제는 가변적이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생각해두었던 삼손의 약물치료를 한번에 시행하고, 사탄을 믿지 않지만 아이언 메이든의 노래에 맞춰 사탄 쇼를 펼쳐 준다. 이미 28년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생존 자체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생존할지가 문제가 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으레 그러하듯 믿음은 권력이 되고, 켈슨은 그저 그것을 부드럽게 흘려보내고자 한다. 물론 그의 사탄 쇼는 좀비 무리나 지미 패거리의 고문 장면보다도 강력한 이 영화의 스펙터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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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점에서 <28년 후> 트릴로지는 기묘한 방식으로 조지 A. 로메로의 시체 삼부작을 반복한다. 로메로의 삼부작이 정치적 은유로서의 생존극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자본주의 비판으로서의 탈출극 <시체들의 새벽>, 그리고 좀비 아포칼립스 속에서 좀비를 연구해 생존하고자 하는 <시체들의 낮>. 로메로의 두 번째 시체 삼부작(<랜드 오브 데드>, <다이어리 오브 데드>, <서바이벌 오브 데드>)은 좀비 아포칼립스 이후 생존자들의 대립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시체들의 낮>을 여러 컨셉으로 반복하는 것에 가깝다. <28년 후>가 굳이 삼부작으로 기획된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유 아닐까. 한 편으로 마무리 짓기에 인간들의 대립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떼거지로 쏟아져 나오는 좀비의 스펙터클을 <월드 워 Z>나 <부산행> 등이 이미 다채롭게 보여준 이후, 그러한 스펙터클을 반복하는 것은 그다지 흥미롭지도 못하다.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 그리고 니아 다코스타는 다시금 로메로가 정치적이며 인간적인 좀비 영화를 만들던 시기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만 같다. 삼부작은 그러기에 적절한 러닝타임이다. 적어도 <워킹데드>처럼 한없이 늘어지진 않을테니까. 그리고 니아 다코스타는 중간다리의 역할을 훌륭이 해냈을 뿐더라, 전편에서 이어지는 스파이크와 지미라는 두 캐릭터의 비교를 훌륭히 해냈다. 다시 대니 보일이 연출할 마지막 편이 개봉하고 난 뒤에야 말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28년 후>는 스타일의 측면에서건 내러티브의 측면에서건 로메로의 삼부작 이후 가장 유의미한 좀비 영화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