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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6. 2017

냉전이 녹아 눈처럼 떨어질 때

레베카 퍼거슨의 1인 2역이 돋보이는 영화 <폴링 스노우>

 냉전이 한창인 1959년의 모스크바, 외교부 관리인 알렉산더(샘 리드)는 한 파티에서 카티야(레베카 퍼거슨)를 만난다. 그녀는 부모님이 반체제 인사로 처형당한 뒤 스파이가 된 인물로, 알렉산더의 친구이자 그를 이용하려는 미샤(올리버 잭슨 코헨)의 지령에 의해 알렉산더에게 접근한다. 처음엔 작전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결국 사랑은 진심이 된다. 알렉산더와 카티야는 미국으로 망명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카티야가 사라지고 만다. 1992년의 뉴욕, 나이 든 알렉산더(찰스 댄스)의 조카 로렌(레베카 퍼거슨)은 고모 카티야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기 위해 러시아로 향한다.


 1960년대와 1992년을 오가며 진행되는 <폴링 스노우>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영화는 <얼라이드> 등 사랑에 빠진 스파이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샤밈 샤리프가 직접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레베카 퍼거슨이 과거의 카티야와 1992년의 로렌을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카티야와 알렉산더의 조카인 로렌이 소련의 붕괴 이후 모스크바로 돌아가 그들의 과거를 조사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다만 단조롭게 느껴지는 정공법의 연출과 익숙한 이야기 전개 때문에 영화 자체는 평작에 머무르고 말았다. 

 <폴링 스노우>는 최근 개봉한 <얼라이드>와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밖에 없다. 시대는 조금 다르지만, 사랑에 빠진 스파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동원한 두 편의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스파이의 감정을 전달한다. <얼라이드>에서는 모래폭풍과 전투 장면 등을 동원하고 선형적인 플롯 구조를 통해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 성공한다. 반면 <폴링 스노우>는 정석에 가까운 연출(서사 구조 및 촬영)을 보여줌에도 1960년대와 1992년을 오가는 교차편집과 건조하게 그려지는 화면 때문에 인물의 감정에 푹 빠질 수 없게 된다. 특히 로렌의 갑작스러운 러브라인은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1인 2역을 소화한 레베카 퍼거슨과,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 샘 리드와 올리버 잭슨 코헨 등 배우들의 호연이 인물들의 감정을 지탱한다. 뻔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후반부의 울림은 존재한다.


 <폴링 스노우>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 속 거의 모든 야외 장면에서 눈이 내린다. 그들의 감정에 얼어붙은 냉전도 녹아 눈처럼 내린다는 의미일까? 혹은 그들의 사랑이 모스크바에 내린 눈 밑에 묻힌다는 의미일까. <Despite the Falling Snow>라는 영어 원제는 후자의 해석에 힘을 실어주지만 <폴링 스노우>라는 국내 개봉명은 좀 더 많은 감상을 가져다준다. 영화 마지막 장면까지 내리던 눈이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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