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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22. 2017

인간 사회 범죄 정신을 가로지르는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의 영화 <보스턴 교살자>

 보스턴에서 13명의 여성이 목 졸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범행의 수법 등이 동일함을 알아챈 경찰은 연쇄살인으로 단정 짓고 수사를 시작한다. 영화 <보스턴 교살자>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쇄살인마 앨버트 드살보를 당대의 청춘스타 토니 커티스가 연기했고, 헨리 폰다가 그를 쫓는 형사 존을 연기했다. <소일렌트 그린>, <바디 캡슐>, <해저 2만 리> 등의 SF부터 <만딩고>, <바라바> 같은 역사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온 장인 리처드 플레이셔가 연출을 맡았다. 과감한 화면 분할 기법과 전후반부가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띠게 되는 서사구조, 영화의 마지막 토니 커티스의 연기 등 뛰어난 요소들이 영화 속에서 돋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화면분할이다. 존 F. 케네디 암살에 대한뉴스를 전하며 시작하는 오프닝에서부터 화면분할이 시작된다. 단순 정보전달처럼 등장하는 화면분할은 이내 교살당한 시체와 거실의 사람을 동시에 비춘다. 거실에 있는 사람이 시체를 언제 발견할 것인지를 두 개의 시선으로 보여주며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경찰의 수사과정을 보여주는 분할화면은 형사의 눈, 차량 속 사람, 검거 과정 등을 보여주며 긴박감을 조성한다. 그런데 후반부의 화면분할은 비슷하게 사용되면서도 전혀 다른 효과를 불러온다. 범행을 저지르러 가는 앨버트의 모습을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화면분할은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살해할지에 대한 서스펜스와 동시에 자아분열을 겪는 앨버트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가 체포된 이후 취조받는 장면에서의 화면분할은 앨버트의 분열된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때문에 전반부와 후반부의 장르가 달라진다. 범죄 수사극에서 심리 스릴러로 넘어가는 화면분할 기법의 사용은 범죄와 인간, 사회와 정신, 영화와 장르를 넘나 든다. 과감하고 실험적이면서 동시에 교과서적인 기법의 연출은 ‘내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었다면 <보스턴 교살자>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좌우로 넓은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적극 활용한 취조실 시퀀스는 단연 압도적이다. 새하얀 벽으로 둘러 쌓인 취조실에서 거울을 보고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발견하는 앨버트, 자신의 다른 인격이 행한 범죄를 목격한 앨버트가 마임처럼 범행을 재현하는 장면, 흰색의 거대한 방구석에서 자신의 이중인격에 충격받는 앨버트의 모습…… 가로로 널찍한 화면과 세트는 앨버트의 정신적 충격과 압박감을 강조한다. 관객은 이미 앨버트가 범인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범행 재현은 롱테이크의 촬영에 담아져 엄청난 퍼포먼스로 다가온다. 존의 목소리로 앨버트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며 끝나는 영화의 엔딩과 ‘보스턴 교살자’ 사건으로 형을 받지 않은 실재 앨버트의 이야기는 수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다중인격인 인물의 살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교살자의 인격과 몸을 공유하는 평범한 배관공 앨버트의 인격은 정말 무혐의인 것일까?


 SF부터 시대극, 범죄 수사극, 스릴러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영화를 만들어 온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영화이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구로사와 기요시와 봉준호의 대담을 들으면서 플레이셔 감독이 더욱 대단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일렌트 그린>과 더불어 그의 최고 걸작이자, 범죄 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 중 한 편이 아닐까? 오락적이면서 메시지도 분명하고, 기존에 알던 배우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연기를 이끌어내며, 현대적이며 실험적이고 교과서적인 연출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능력에 116분의 러닝타임 내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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