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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6. 2017

소재를 영화적으로 이끌어가는 힘

이수연 감독의 심리 스릴러 <해빙>

*스포일러 주의


 한강의 얼음이 녹는 봄이 되자 몸통만 남은 어떤 시체가 떠오른다. 자신의 병원이 도산한 이후, 경기도의 한 개인병원에 취직한 승훈(조진웅)은 성근(김대명)이 운영하는 근처 정육식당 건물 위층에 세를 든다. 성근의 아버지 정노인(신구) 수면내시경을 진행하던 중, 살인 고백처럼 들리는 “다리는 OO대교에…… 몸통은 OO대교에……”라는 중얼거림을 듣게 된다. 과거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지역인 데다가, TV를 통해 들리는 시신 발견 소식까지 들려온다. 건물 1층 정육식당의 부자에게서 수상함이 느껴지는 와중에, 경찰이 전처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고 승훈을 찾아온다. <해빙>은 일련의 사건 속에서 정신적 압박을 느끼는 승훈을 따라가는 심리스릴러이다. 

 <해빙>은 승훈 주위에서 순차적으로 터지는 여러 사건들이 그의 심리를 어떻게 자극하는지 집요하게 그려낸다. 이혼, 연쇄살인, 수상한 주인집, 피로한 병원의 일과, 낯선 동네 등이 그를 자극한다. 묘하게 맞아떨어져가는 사건들은 정육식당 부자가 사람들을 납치해 잡아먹고 있다는 결론으로 승훈을 이끌어간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승훈을 따라가며 승훈과 함께 관객을 압박한다. <해빙>은 여러 층위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 다양한 사건과 정보 속에서 정신적 압박감을 느낀다는 소재를 영화적으로 풀어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승훈의 얼굴로 점점 깊게 들어가는 클로즈업은 정식적 압박의 수위를 점점 높여간다. 사건의 진행을 꿈 혹은 환상처럼 그려내는 호러적 연출 방식은 (종종 과하게 보이지만) 정신착란을 겪는 승훈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승훈의 1인 심리극에 가까운 영화는 후반부 반전이 드러나기 전까지 영화적 기법을 통해 승훈이 겪는 정신적 압박을 풀어낸다. 


 영화의 반전을 풀어내는 후반부 취조실 장면에선 최근에 관람한 영화인 <보스턴 교살자>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정신분열(<해빙>에서는 정신착란?)로인해 자신이 저지를 살인을 인지하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의 범죄를 인지하는 순간의 뛰어난 연기는 굉장한 몰입도를 선사한다. 다만 <해빙>은 <보스턴 교살자>처럼 정교하지 못하다. 너무 많은 순간들이 뒤섞여버린 살인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플래시백이 동원되고 지나치게 설명적인 영화의 태도는 단순한 퍼즐 맞추기로 변해버린다. 굳이 한 번 더 꼬아주는 영화의 에필로그는 힘있게 이끌어 온 영화 초중반부의 감흥을 반감시킨다. 심리스릴러가 반전 강박의 영화로 변해버리는 후반부는 여러모로 아쉽다. 특히 프로포폴과 관련된 에필로그 장면은 떡밥 회수용으로써의 용도로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초중반부의 몰입감과, 영화적으로 소재를 밀고 나가는 힘은 <해빙> 이후의 이수연 감독을 기대하게 만든다. 사실 영화의 반전은 영화 중반부에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허나 반전에 중점을 두는 대신, 승훈의 심리에 주목한 초중반부의 연출은 2017년에 등장한 지루하고 뻔한 한국영화 중에서 유독 돋보인다. 후반부의 봉합이 아쉽지만, 영화 초중반부에서 관객의 심리를 몰아가는 연출력은 주목할만하다. 공산품처럼 뽑아낸 상품 같은 영화들이 넘치는 와중에 <해빙>은 <싱글라이더>와 함께 소재를 영화적으로 이끌어가려는 힘이 보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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