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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6. 2017

침묵 속에서 목소리를 믿다

마틴 스콜세지의 종교영화 <사일런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준비한 역작이라고 알려진 <사일런스>를 관람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영화는 천주교 박해가 심각한 17세기 중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스승인 페레이아(리암 니슨)가 배교(종교를 배신함)했다는 소문을 듣고, 사라진 그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떠난 두 신부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프(아담 드라이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목숨을 걸고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그곳의 사람들을 보고 두 신부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자신들의 믿음은 무엇이었는지, 이토록 고단한 고난 속에서 신은 왜 침묵하는지 끊임없이 되뇐다. 영화는 159분의 러닝타임 동안 신앙 그 자체와 믿음의 형태를 이야기한다.

 영화 내내 묘사되는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끔찍하다. 신자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바닷가에 세워두곤 밀물에 잠기게 만들고,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고 귀 뒤에 생채기를 내 천천히 피가 빠지게 한다. 동시에 박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성화를 발로 가볍게 밟기만 하면 배교한 것으로 간주해 박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신부인 로드리게스와 가루프, 일본의 천민인 신자들은 쉽게 배교하지 않는다. 굳건한 믿음을 보이며 박해를 견디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경외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의 천민들이 이렇게 천주교를 믿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천주교, 기독교의 기반이 되는 만민평등사상이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라 믿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들은 조선만큼이나 당연했던 신분제도는 처참해 보이는 그들의 삶의 근원이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천주교는 교리 그대로 믿음을 통한 구원이었다. 페레이라는 그들의 믿음이 서구에서 온 자신들의 믿음과는 다르다고 여긴다. 자연물을 신으로 여기고, 인간과 자연을 초월한 존재를 믿지 못하는 그들의 신앙과 서구인의 신앙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일본의 기리시탄(크리스천의 일본 발음)은 서구의 신부를 신 자체로 여긴다. 때문에 로드리게스는 자신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함을, 박해에서 빼낼 수 없음을 알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영화 내내 내레이션으로 등장하는 그의 일기이자 기도문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과 침묵하며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신을 찾는다.

 나가사키를 통치하는 이노우에(이세이 오가타)는 로드리게스를 정신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해 그의 앞에서 기리시탄을 박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리시탄이 박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로드리게스가 배교하는 방법밖에 없다. 성화가 그의 발 앞에 놓이고, 로드리게스는 침묵하는 신에게 다시 질문한다. 기리시탄과 자신의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에게 침묵 속에서 어느 목소리가 들려온다. 로드리게스는 고행 속에서 자신의 모습에서 예수를 본다. 


 이따금씩 등장하는 찬송가와 일본 사람들의 노래를 제외하면 음악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밖에서 깔아놓는 BGM은 영화 속에 없다. 관객은 로드리게스의 고행을 숨죽이며 따라간다. 그 과정은 <벤허>처럼 스펙터클 하지 않다. <사일런스>는 사람의 신념은 무엇인지, 신의 침묵 속에서 신앙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덤덤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주연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의 전작 <핵소 고지>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담아내면서도, 좀 더 종교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후반부 몇 장면을 제외하면 종교 자체에 강압적인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 연출은 비종교인에게도 어떤 울림을 준다. 결국 신부들이 말하던 진리(truth)는 종교와 관계없는 인간의 신념, 글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다만 종교적 색채가 짙게 드러나는 후반부는 <사일런스>를종교영화의 틀 안으로 축소시킨다. 물론 <사일런스>는 17세기 일본으로 떠난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종교영화가 맞다. 허나 후반부의 특정 장면은 <사일런스>가 천주교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종교영화로만 보이도록 만든다. 해석의 폭을 좁히는 장면이랄까. 또한 스콜세지가 30년 가까이 이영화를 준비했다는 홍보문구에 비해서 어딘가 아쉽게 느껴진다. 내레이션의 활용, 인물에 대한 탐구 등 스콜세지 영화의 특징이 잘 녹아있는 영화이지만, 스콜세지 스스로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 말하는 것에는 조금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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