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거장 파울로 소렌티노의 <유스>
*스포일러 포함
은퇴한 지휘자 프레드(마이클 케인)와 노장 영화감독 믹(하비 케이틀)이 주인공이고 제목이 ‘젊음(Youth)’이다.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와 제목, 유럽의 예술영화라는 점에서(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영화는 처음 봤다) 젊음을 갈망하는 늙은 예술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너희 젊음이 너희들이 노력해서 받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은교> 속 이적요(박해일)의 대사와도 같은 영화일거라 예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상은 빗나갔다. <유스>는 젊음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늙은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젊음이란 단어 자체를 재정의하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대사는 믹의 입에서 나온다. 믹은 배경이 되는 요양(?) 호텔에서 팀을 꾸려 자신의 마지막 영화의 각본 작업을 하던 팀원들과 함께 산의 휴게소에 올라 일장연설을 한다. 전망대의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산을 보며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게 미래이고” 망원경을 거꾸로 봐서 가까이 있는 것이 멀리 보이는 것을 보고 “멀어 보이는 것이 과거다”라고 말한다. 믹은 이어서 “미래를 가까이 보는 것이 젊음”이고 “멀어 보이는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늙음”이라고 말한다.(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그래서 믹은 아직 젊다. 마지막 영화라곤 하지만, 영화의 촬영과 개봉이라는 가까운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믹은 브렌다(제인 폰다)에 의해 영화가 엎어지자 머나먼 과거를 마주하고 자살을 택한다.
프레드에게 젊음은 조금 다른 의미인 듯하다. 프레드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자신에게 기사작위를 내리겠다는 여왕의 부탁을 거절한다. 자신의 대표곡인 ‘심플 송’을 조수미와 함께 불러달라는 요청 때문이다. 후에 밝혀지지만, 그에게 ‘심플 송’은 아내만을 위한 곡이었고 아내만이 부르고 녹음할 수 있는 곡이었다. 아내가 악성 치매에 걸려 더 이상 ‘심플 송’을 부를 수 없게 되자, 그의 젊음은 묻혀버렸다. 스스로 ‘음악만 알고 살아온 노인네’로 자신의 젊음을 가둬버린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 딸 레나(레이첼 바이즈)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고, 믹의 죽음을 보고, 10여년 만에 아내를 찾은 이후 다시 무대에 선다. 믹이 잃어버린 젊음을 프레드가 챙긴 느낌이다.
아직 젊은 인물 헐리우드의 톱 배우 지미(폴 다노)는 믹과 프레드보다 더 인생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과거의 출세작 <미스터 큐>의 깡통로봇으로만 기억되는 것에 강한 불쾌감을 가지고 있다. 곧 다가올 미래인 영화 촬영만을 바라보며 젊음을 유지하는 믹과는 다른 모습이다.(심지어 믹은 하루에 오줌도 몇 방울 못 싸는 늙은이이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소녀가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출연작을 감명 깊게 봤다고 했을 때 비로소 생기를 되찾는다. 그가 호텔에 틀어박혀 연구하던 역할은 히틀러였다. 역할 앞에 공포를 가진 지미는 믹보다 젊지 못했다.
호텔 안의 다양한 인물들의 연령대만큼 영화엔 다양한 육체가 등장한다. 사우나와 온천 장면이 많기에 살색의 몸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클로즈업을 통해 노인들의 주름지고 검버섯이 핀 피부, 축 처진 가슴, 퍼진 뱃살들과 젊은이들의 매끈한 피부, 탱탱한 가슴, 탄탄한 근육을 대조시키듯 보여준다.하지만 소렌티노 감독이 말하는 젊음은 단순한 육체의 젊음이 아니다. 젊은 육체는 젊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젊게 산다는 것’에 대한 소렌티노의 이야기가 <유스>의 담겨있다. 아직 40대의 감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통찰력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