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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15. 2017

소재를 던져 놓고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

재개봉하는 인도 영화 <청원>

 2009년 국내 개봉 당시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던 인도영화 <블랙>(2005)을 연출한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2010년 작품 <청원>이 재개봉한다. 공연 중 사고를 당해 사지가 마비된 채 14년을 버텨온 마술사 이튼(리틱 로샨)은 라디오 DJ를 하면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변호사 데비아니(쉐나즈 파텔)에게 자신의 안락사를 위한 청원을 법원에 제기해달라고 부탁한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이튼을 12년간 간호해온 소피아(아이쉬와라 라이)는 당황한다. <청원>은 오랜 기간 고통을 겪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 그 바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안락사를 청원한 이튼의 이야기, 이튼의 청원을 심판해야 하는 법원 장면, 12년간 이튼을 간호하며 생긴 감정을 드러내는 소피아,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이튼의 과거 모습, 갑자기 이튼을 찾아와 제자로 받아달라는 오마르(아디티야 로이 카푸르) 등의 이야기가 126분 동안 거칠게 연결된다. 과잉됐지만 정돈되지 못한 영화의 음악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인물들은 정돈되지 못하고 러닝타임을 채운다. 매끄러운 연결점 없이 제시되는 이야기들은 몰입을 툭툭 끊어놓는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이튼에 대한 소피아의 사랑이든, 안락사를 위한 이튼의 투쟁이든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심산이었다면 아쉽게도 실패한 작전이다.


 안락사를 바라는 이튼에 대한 묘사를 비롯해 영화 속 몇몇 상황들에 대한 묘사들이 헐거운 점도 아쉽다. 이튼이 법원에 처음 출석하며 12년 만에 외출하는 장면은 마치 삶을 지탱하기 위해 고통과 싸우는 사람의 클리셰처럼연출된다. 아름다운 야외의 풍경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을 보면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법정에서 이튼의 안락사에 반대하는 검사 측의 논리는 ‘논리 없음’ 그 자체라 이야기를 빈약하게 만든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은 영화의 맥락을 뜬금없게 만들고, 특정 캐릭터의 서사를 불필요할 정도로 가혹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 끝에 등장하는 영화의 결말은 ‘이렇게 해도 안 울 거야?’라는 식의 JK필름 스타일의 신파로 변질된다. 

 그래도 <청원> 속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을 뽑아보라면, 인도 영화 특유의 춤추고 노래하는 맛살라 시퀀스를 이튼의 마술쇼 장면으로 대체한다는 점이다. 안무와 마술(이라고 하지만 마법에 가까운 퍼포먼스)이 뒤섞인 마술쇼 장면들은 이튼의 과거와 성격을 아름다운 비주얼로 전달한다. 이튼의 플래시백인 마술쇼 장면 중 몇몇은 너무 친절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해당 장면이 나오는 순간만큼은 영화에 확실히 집중할 수 있었다. 다만 후반부의 한 플래시백은 굳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청원>은 죽음을 바라는 사지마비 환자의 이야기를 그려내려 한 영화이다. 보지도 듣지도 앞을 보지도 못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블랙> 과의 유사하게 느껴진다. 다만 과잉되어 넘치는 음악,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야기, 주제와 뭔가 어긋난 묘사 등이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 대부분이 대사로 전개되는 <청원>은 영상매체 대신 소설을 통해 접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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