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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2. 2017

물을 데우는 재치와 한계

일본 가족드라마 <행복 목욕탕>

 오랜만에 국내 개봉하는 오리지널 각본 영화이다. 나카노 료타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연출 데뷔작 <행복 목욕탕>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물을 데우는 뜨거운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었다. <종이달>, <화장실의 피에타> 등에 출연한 미야자와 리에가 주인공 후타바로 출연한다. 목욕탕을 운영하는 후타바와 그의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 1년간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남편 가즈히로(오다기리 죠), 가즈히로가 다른 아내 사이에서 둔 딸 아유코(이토 아오이)의 이야기가 125분의 러닝타임 동안 이어진다. 후타바가 말기 암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강인한 여성상과 단순히 혈연으로 정의되지 않는 가족의 의미를 전달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모순을 갖는 지점들과,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는 조금은 부실한 각본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는 후타바가 쓰러진 뒤 말기 암 판정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아유코를 데리고 돌아온 가즈히로,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 당하는 아즈미, 엄마를 찾아 나서는 아유코,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히치하이커와의 이야기 등 여러 에피소드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각종 에피소드를 거치고 초반부터 예견된 수순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한 편의 영화라기 보단 2,30분 분량의 단편을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후타바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는 자신이 메인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 외의 부분에서 평면적인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하나의 캐릭터가 2시간 동안 균일하게 유지된다기 보단, 연출적 필요에 의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한다. 이런 방식의 캐릭터 묘사는 종종 TV 드라마 같은 영상의 룩은 <행복 목욕탕>이 영화보단 TV 드라마나 웹드라마의 형식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잘라서 에피소드 하나로 만들면 되겠다’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영화가 그려내는 여성상에 대해서 의문점이 생긴다. 영화가 묘사하는 여성상은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현실적인 묘사의 틀도 있겠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후타바의 모습은 가부장제가 원하는 강인한 여성상을 따라간다. 가업을 이어가고, 가족 제도 안에서 사람들을 포용하며, 가계와 집안 살림을 동시에 책임지는 슈퍼우먼의 모습이 후타바의 모습이다. 영화가 묘사하는 가족에 의미에 대해서는 더한 의문점이 남는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혈연에 연연하지 않는, 다양한 방식으로 엮인 사람들이 가족공동체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즈미와 관련한 후반부의 에피소드나,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 후타바의 모습은 영화가 2시간 동안 그려온 모습과 모순되어 영화 전체에 대한 감흥이 줄어든다. 또한 집단 따돌림 당하던 아즈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내 직간접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만드는) 전형적인 2차 가해에 가깝다. 문제의 원인을 욕하는 대신 피해받는 사람의‘용기’를 운운하는 방식과, 그렇게 ‘용기’를 얻은 아즈미의 행동은 트라우마를 또 다른 트라우마로 덮어버리는 모습일 뿐이다. 

 다만 후반부에서 가즈히로가 취하는 화해의 메시지 같은 재치는 돋보인다. 골 때리는 방식으로 그려지는 화해의 제스처는 영화의 단점을 적지 않게 상쇄시켜주며, 신인 감독인 나카노 료타 감독의 인장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행복 목욕탕> 자체의 이야기는 영화보단 TV 드라마에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나카노 료타가 차기작에서 어떤 장면을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기엔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다만 그가 직접 각본을 썼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영화에 맞는 연출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주인공 후타바를 연기한 미야자와 리에와, 아즈미를 연기한 스키사키 하나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p.s.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을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비유를 담은 제목을 바꾼 것은 수입사의 패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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