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은 내가 전작을 모두 감상한 몇안 되는 감독이다(생각해보니 첫 장편영화인 <피위의 대모험>(1985)은 못 봤다). 그가 처음 만들었던 단편 애니메이션 <빈센트>(1982)부터, 가장 최근작인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2016)까지 20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어릴 적부터 따라왔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비디오가 늘어져라 봤던 <크리스마스 악몽>(1993)부터, 케이블 채널을 넘기면서 수십 번은 본듯한 <혹성탈출>(2001), 즐겨보던 동화의 재현이었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같은 영화들이 줄지어 떠오른다. <가위손>(1990)은 내 인생의 첫 멜로드라마였고, 히스 레저의 조커보다는 <배트맨>(1989)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를 조금 더 좋아한다. 그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큰 눈의 배우들, 헬레나 본햄 카터와 (지금은 끔찍이 싫어하게 된) 조니 뎁의 얼굴은 그의 영화를 보면서 자란 시기 중간중간에 인장처럼 남아 있다. 팀 버튼이 자신의 ‘빅 아이’ 캐릭터들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았던 화가 마가렛 킨의 전기영화 <빅 아이즈>(2014)를보며 짠한 감정을 느꼈던 이유이다. 잭 스켈링톤부터 조니 뎁이 연기한 가위손/윌리 웡카/모자장수/스위니 토드 등의 눈 큰 캐릭터, <화성침공>(1996)의 화성인, <프랑켄위니>(2012)의 프랑켄위니, <유령신부>(2005)의 빅터와 브라이드, 가장 최근의 캐릭터인 미스 페레그린(에바 그린)과 제이크(에이사 버터필드), 엠마(엘라 퍼넬)까지 팀 버튼의 영화는 ‘빅아이’의 향연이다.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본,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단편영화 <빈센트>의 주인공도 눈이 크다. 팀 버튼의 그림책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속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이다. 팀 버튼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세상의 어느 구석에서 큰 눈으로 ‘우울’이라는 상태를 관조하는 것 같다. 그의 영화는 빈센트 프라이스를 롤모델로 삼은 다락방의 소년부터 슈퍼히어로인 배트맨과 원더랜드의 모자장수까지 외톨이이기를 자처한 인물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런 면에서 영화 속 캐릭터들은 팀 버튼 본인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가난하거나 어딘가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의 구석으로 향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인정 보단 아웃사이더의 유대를 꾀한다. 펭귄(대니 드비토)이 배트맨(마이클 키튼)의 앞에 나타나고, 윌리 웡카는 도시 변두리에 살던 찰리(프레디 하이모어)를 후계자로 만들며, <비틀쥬스>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는 유령 비틀쥬스(마이클 키튼)와 손을 잡는다. 팀 버튼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과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연출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다름’을 세상에 드러낼 방법을 강구한다. <에드 우드>(1994)의 에드 우드(조니 뎁)는 자신의 Z급 영화를 계속 제작하려 하고, 조커는 미술관의 예술품에 자신의 색을 덧칠함과 동시에 퍼레이드를 개최하며, 윌리 웡카는 전 세계적인 황금티켓 이벤트를 개최한다. 아웃사이더로서의 개성과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영화감독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팀 버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팀 버튼 영화 세계는 이렇게 언제나 ‘빅 아이’ 아웃사이더의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영화를 좋아하던, 나를 포함한 아이들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집 밖에서 뛰어 놀기보다는 방구석에서 영화나 만화나 책이나 TV 보기를 좋아했고, 무언가 그리고 쓰고 만들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재능을 가졌을 때의 모습이 팀 버튼이 아닐까? 때문에 이따금 관객은 팀 버튼의 영화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없는 돈을 모아 초콜릿을 사며 황금 티켓을 기대하던 찰리, 자신만의 크리스마스를 만드려던 잭 스켈링톤, 할아버지의 유언을 믿고웨일즈의 외딴섬으로 향하는 제이크는 팀 버튼의 외톨이 페르소나가 세상과 부딪히는 모습이다. 팀 버튼의 실패작 <혹성탈출>이나 <다크 셰도우>(2012),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인 <화성 침공>은 이런 지점에서 그의 다른 영화들과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다. 때문에 그의 영화 세계는 <가위손>과 <배트맨 리턴즈>(1992)에서 이미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의 작품들, 가령 <찰리와 초콜릿 공장>,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은 이미 완성된 세계의 동어반복이며, 이미 원작이 있는 변주이기에 전작들보다 새로워지지 못했다.
때문에 <빅 아이즈>를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팀 버튼의 두 번째 영화인 <빅 아이즈>의 포스터에는 그의 영화 속 캐릭터라고 해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은 큰 눈동자의 아이가 그려져 있다. 실제로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마가렛 킨은 거대한 눈을 가진 아이의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영화는 여성 화가의 작품은 거의 판매되지 못하던 시기에, 마가렛의 남편인 월터(크리스토프 발츠)가 자신의 이름으로 마가렛의 그림을 대신 팔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아낸다. 조니 뎁은 물론, <화성침공> 이후 처음으로 헬레나 본햄 카터가 출연하지 않는 등 팀 버튼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 대신 새로운 배우를 기용해 만든 작품이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조니 뎁을 에드 우드로 만들고, 무려 오손 웰즈(빈센트 도노프리오)를 만나 자신만에 영화 세계를 꾸려나가는데 조언과 용기를 구했던 첫 실화 바탕 영화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마가렛이 월터에게 소송을 걸어 그림에 대한 권리를 되찾는 과정은 <가위손>과 <배트맨 리턴즈> 이후 꾸준히 반복되던 영화 속 외톨이 캐릭터 패턴에 대한 자기반성처럼 보인다. 팀 버튼은 자신의 ‘빅 아이’ 페티시에 영향을 준 마가렛 킨의 이야기를 직접 영화로 만듦으로써 원작을 가진 외톨이 캐릭터를 영화화하던 그의 안일함을 반성한다. 흥행엔 성공했으나, 비평적 부분에서 실패에 가까웠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양측에서 모두 실패한 <다크 셰도우>에 쏟아진 비판에 대한 팀 버튼의 대답이 <빅 아이즈>에 담겨 있다. 초심으로 돌아간 듯 만들어낸 <프랑켄위니>와 팀 버튼의 인장과도 같은 ‘빅 아이’ 캐릭터의 기원과도 같은 <빅 아이즈>는 그의 어떤 태도 변화를 드러낸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그런 변화에 부응하는 영화였냐고 하기엔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에는 여전히 큰 눈을 가진 배우들이 등장하고, 세상과 단절된 위치에서 살아가야 하는 외톨이의 이야기이며, 독특한 비주얼의 판타지 장르를 이어나간다. 또한 그의 영화 속에서 배제되는 흑인과 아시안 캐릭터에 대한 비판은 여전한 만큼, 그의 영화가 무언가 변했다고 말하기는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CG 남용과, <유령신부>의 과한 완벽주의가 조금은 사라진 모습은, 한결 힘을 뺀 팀 버튼의 판타지를 만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팀 버튼은 앞으로 마이클 키튼과 위노나 라이더가 돌아오는 <비틀쥬스 2>와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 필름의 차기작인 <덤보>를 연출할 예정이다. 새로움 대신 익숙함으로 돌아올 예정이라지만, 조금 더 여유롭게 작품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이는 팀 버튼의 차기작에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