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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5. 2017

신선한 아이디어와 황당한 만듦새

서울을 배경으로 한 앤 해서웨이의 괴수영화 <콜로설>

 서울에 괴수가 나타났다. 한국에,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갑자기 괴수가 나타나 서울을 박살 내는 영화가 나온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괴수가 앤 해서웨이와 연결되어있다는 설정은 충분히 흥미를 유발한다. 영화의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맡은 나초 비가론도 감독은 이런 흥미로운 설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신선한 아이디어는 언제나 좋은, 혹은 좋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의 시발점이 된다. <콜로설>역시 그런 기대감을 품고 극장을 찾을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영화의 초중반부까지 이끌어가던 독특한 설정과 마이너 한 감성의 이야기는 한 캐릭터의 붕괴와 함께 무너진다.


 영화는 알코올 문제를 앓고 있는 주인공 글로리아(앤 해서웨이)가 애인인 팀(댄 스티븐스)과 다투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우연히 고향 친구 오스카(제이슨 서디키스)와 재회한 글로리아는 그의 바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서울에 괴수가 나타나 도시를 파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충격에 빠진 글로리아는 뉴스를 보다 괴수가 자신의 습관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괴수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글로리아는 매일 같은 시각 나타나는 괴수의 행동을 조종해 피해를 줄이려 한다. 영화 초중반부의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그러나 오스카의 캐릭터가 갑작스럽게 열등감을 쏟아내며 무너져 내리고, 영화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110분의 러닝타임 중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각본이 아쉽다.

 한국인이기에 아쉬운 지점 역시 존재한다. 영화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한국어는 배경이 서울임에도 드라마 <로스트>의 ‘꽈찌쭈’ 스타일 한국어를 구사하고, 부천과 여의도에서 소스를 촬영해간 영상은 서울의 지리를 제멋대로 재구성하며(부천 상동역 인근 대로가 서울로 둔갑하는 순간),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 바비큐’라고 한글로 적힌 간판을 목격하게 된다. 여러 한국계/한국 국적 배우가 할리우드에 진출한 지금, 언제까지 할리우드 영화에서 이상한 억양의 한국말을 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사실 이런 사소한 문제는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다. 실제로 영화 오프닝의 이상한 억양의 한국어를 자막 처리함으로써 한국어를 하는 관객만 웃을 수 있는 포인트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히려 한국인이기에 아쉬운, 아니 짜증 나는 지점은 (미국은 아니지만) 미국인이 조종하는 괴수에 의해 서울 도심이 가루가 된다는 설정이다. 한국(혹은 북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강대국이 원한다면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는, 그만큼 팽팽하게 돌아가는 현재의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며 <콜로설>의 무심한 태도에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블랙코미디적인 태도로 이 상황을 그려내는 시도도 없고, 영화는 오롯이 글로리아의 개인사에 집중하면서 정치적인 문제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콜로설>이 그러한 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영화도 아니고, 서울이 배경이된 이유 역시 감독이 원하던 일본에서 촬영할 수 없게 되자 선택한 차선택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무심한 태도는 자신의 행동이 곧 괴수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이를 장난으로 대하는 몇몇 장면의 모습과 겹쳐버린다. 타국의 관객이라면 상관하지 않았을 부분이겠지만, 한국의 관객이기에 느껴지는 짜증이 <콜로설>을 관람하면서 발생한다.

 만약 영화의 완성도가 좋았다면 이와 같은 부분은 장르적 허용으로 용인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나초 비가론도 감독의 각본과 연출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 밖의 상황을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지 못했고 흡인력 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결국 정리되지 못한 후반부의 오스카 캐릭터와 아무런 의미 없이 소비되고 마는 팀과 조앨(오스틴 스토웰) 등의 캐릭터, 힘을 잃고 무너지고 늘어지는 이야기는 황당하지만 신선한 설정을 그저 황당한 채로 남겨둔다. 결국 <콜로설>은 1500만 달러의 저예산 치고 준수한 특수효과와 캐스팅을 자랑하지만, 어느 것 하나 거두어들이지 못한 채 아이디어만 남긴 황당한 괴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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