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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14. 2017

1년에 한 번씩은 필요한 쾌감

8번째 영화로 돌아온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분노의 질주>가 다시 돌아왔다. 브라이언(폴 워커)을 떠나보내는 최고의 헌사였던 전작 <더 세븐> 이후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이야기였다.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고 친밀감과 유대감을 표하던 도미닉(빈 디젤)이 가족을 배신하게 된다는 것이 이번 <더 익스트림>의 소재가 되었다. 사이버 테러리스트 사이퍼(샤를리즈 테론)의 계략에 의해 도미닉이 레티(미셸 로드리게즈)와 루크(드웨인 존슨)을비롯한 가족을 배신하게 되고,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는 루크에게 <더 세븐>의 악역 데커드 쇼(제이슨 스타뎀)와 힘을 합쳐 도미닉을 잡을 것을 요청한다. 레티, 루크, 데커드와 테즈(루다크리스), 로만(타이리스 깁슨), 램지(나탈리 임마누엘), 그리고 노바디의 부하 리틀 노바디(스콧 이스트우드)가 도미닉을 저지하고 사이퍼의 계략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스트릿 레이싱을 즐기며 스테레오 등을 소소하게 훔치던 주인공들은 어느새 인터폴 Top 10 현상수배자들이 되었다. 새 영화가 나올수록 커지는 스케일에 탱크와 비행기에 이어 자동차 스카이다이빙까지 등장했다. <더 익스트림>에선 해킹으로 조종되는 자동차 쓰나미와 핵잠수함이 등장한다. 어디까지 스케일이 커질 수 있을까 고민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건물에서 수많은 자동차를 떨어트리고 자동차의 파도를 만들어내며 거대한 폭파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은 ‘CG를 동원할 수밖에 없지만 실제로 되는 것은 다 하겠다’는 시리즈의 기조를 고스란히 따라간다. "이 계획은 미쳤어""네 계획도 마찬가지야""그럼 둘 다 하자" 영화 후반부 테즈, 램지, 루크가 주고받는 이 대사는 영화의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기에 피로감을 느끼느냐 느끼지 않느냐가 <더 익스트림>을 즐길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른다.

 이제 8번째 시리즈가 개봉했고, 4편부터 갑자기 커진 스케일과 거대한 액션 시퀀스에 관객들이 피로감을 느낄 법도 하다. 블록버스터 팝콘무비로써 <분노의 질주>의 플롯은 이미 5편 <언리미티드>에서 완성되었다. 가족을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하고, 그와 싸우다 만나게 되는 사람은 새로운 가족이 되며, 결국 적을 이기고 가족이 화합하며 기도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영화는 새로운 적과 새로운 가족을 등장시키며 스케일을 확장시켰고, 폴 워커에 대한 헌사로 마무리된 <더 세븐>에서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더 익스트림>이 그 임계점을 넘을 무언가를 보여주었다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도미닉이 가족을 배신한다는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것은 영화 안팎의 대단한 감정적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한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전작의 캐릭터가 아쉽게 느껴진다. 도미닉의 배신에도 이렇다 할 감정적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 로만과 테즈, 루크 등의 캐릭터나 데커드의 자연스러운(?) 합류에 이은 가족애/형제애 형성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화끈하다. 사실 머리 비우고 보는 팝콘무비로 <분노의 질주> 시리즈만 한 영화가 많지는 않다. <더 익스트림>은 오락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 그것만을 생각하고 만든 영화이다. 인종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백인이 아닌 인물이 서사의 중심에 서있는 점도 독특하고 터프한 여성 캐릭터도 계속 등장해왔다.(그럼에도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해 담아내는 장면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더 세븐>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며 같은 자동차 액션 영화로 비교됐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의식한 듯한 쇼트가 몇 보여 기시감을 주지만, 액션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배우를 커버하는 셰이키 캠 같은 트릭은 없다. 타격의 순간을 잡아내는 액션의 촬영은 확실한 쾌감을 제공한다. 

 <더익스트림>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크게 이야깃거리가 없다. 루크, 레티, 로만, 테즈 등의 캐릭터는 전작과 크게 달라진 바 없고, 배신이라는 소재를 들고 나타난 도미닉은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주진 못했다. 다만 시리즈 사상 가장 분노한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있다. 사이퍼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의 활용에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를 손에 넣으려는 욕망을 지는 악당을 잘 연기했지만,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를 생각해보면 그에게 짧은 액션이라도 분배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데커드 쇼인데, 이를 연기한 제이슨 스타뎀은 전작의 터프한 모습보다는 폴 페이그의 <스파이> 속 코믹한 모습에 가깝다. 꽤 극적인 캐릭터 변화인데, 후반부에 가서는 그가 영화 리듬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스터 노바디의 부하로 출연한 스콧 이스트우드는 몇몇 개그를 위해 소비될 뿐 별 의미 없는 캐릭터였고, 6편 <더 맥시멈>의 악역인 오웬 쇼(루크 에반스)의 등장과, 그와 데커드의 어머니로 등장한 헬렌 미렌, <언리미티드>에서 감초 역할을 맡은 쌍둥이 등의 카메오가 시리즈 팬에게 즐거움을 준다. 영화 곳곳에 숨은 폴 워커의 캐릭터 브라이언에 대한 헌사도 반갑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결국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다. 보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의미 없는 영화이면서, 휴식이 필요할 때 가장 빠르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에너자이저이다. 이런 영화의 피로감을 호소할 수는 있겠지만, 1년에 한 편 정도 이런 거대한 팝콘무비가 필요하다. <더 익스트림>은, 그다음 편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오락이라는 목적에 충실했고 그것을 달성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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