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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6. 2017

현기증 나는 트럼프 미국의 애국

 4년이 지났다. 테러가 벌어지고 4년이 지난 지금 <패트리어트 데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고작 4년의 시간이 흐른 뒤 사건을 ‘현장감 넘치게’ ‘생생하게’ 재연한 영화가 등장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사건 당시의 현장을 연출된 이미지로 재현하는 영화가 스크린에 걸렸다. 자연재해가 아닌 사람에 의해 그릇된 생각에 의해 벌어진 대량살상 범죄가 연출된 극영화로 제작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거의 매달 세계 각지(라고 쓰고 서구권 제 1 세계라고 읽는)에서 벌어지는 테러에 덤덤해졌기에 이런 영화가 개봉한 게 아닐까 싶은 정도이다. 영화 속에서 현장감이라는 명목으로 CCTV, 스마트폰 카메라, 캠코더, 헬리콥터 촬영 영상, 방송화면 등이 동원된다. 실제 사건 당시의 영상이 영화 속에 섞인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연출된 장면들은 영화 속에 존재한다. 이런 방식의 ‘현장감’을 윤리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 속 인물은 대부분 실존인물이다. 존 굿맨, 케빈 베이컨, J.K. 시몬스 등의 배우가 연기하는 에드 데이비스, 릭 드로리어스, 제프 퍼글러스 등은 실제 경찰과 FBI인 인물이다. 그러나 마크 월버그가 연기한 주인공 토미는 가상의 인물이다. 사건 발생부터 용의자 검거까지의 과정 동안 활약한 여러 경찰의 이야기를 하나로 합친 인물이다. ‘애국자의 날’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가 그려내는 어떤 애국의 초상이 마크 월버그의 연기를 통해 드러난다. 인종차별적 성향의 폭행 전과가 있는 배우에게 미국적인 애국의 초상을 맡겨도 되는지에 대해 즉각적인 의문이 든다. 동시에 <패트리어트 데이>가 취하는 인종배제적 태도는 이 영화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맞이한 미국에 어울리는 ‘트럼프 미국의 애국영화’ 임을 증명한다.

 영화엔 백인 외의 인종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실제 사건에서 등장했던 인물을 제외하면 백인 외의 인종은 경찰과 FBI의 몇몇 단역뿐이다. 그렇게 등장한 몇몇의 백인이 아닌 실존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영화의 인종배제적 태도를 드러낸다. 가령, 용의자 추적에 중대한 역할을 한 던 멍(지미 O. 양)은 영화 초반부부터 등장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난 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영화 속에서 사라졌다는 표현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타메를란(티모 멜리키즈)를 체포한 제프가 그 이후의 장면에서도 등장하는 것과 묘하게 대비된다. 영화 초반부에서 일상을 담아낸 캐릭터 중 중반부 이후 퇴장해버린 듯 사라지는 캐릭터는 중간에 사망하는 경찰 션(제이크 피킹)과 던 멍뿐이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실제 던 멍의 인터뷰는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채 진행되는 다른 인터뷰이와는 다르게 길거리에서 진행된다. 가장 어이없었던 장면은 던 멍이 용의자를 신고하고 난 뒤 토미와 나누는 대화이다. 자기 차량의 GPS 추적번호를 말하는 던 멍에게 토미는 “숫자를 어떻게 그렇게 잘 외워?”라는 농담 아닌 농담 같은 대사를 던진다. 인종차별 성향의 범죄 전과를 지닌 사람의 입으로 인종 스테레오 타입에 찌든 대사를 듣는 게 이영화에 필요한 것일까? 설령 실제 인물의 증언에서 나온 이야기라도 각본에서 충분히 거를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시장은 흑인이고, 단역이지만 흑인 경찰관도 여럿 등장하며, 동양인 캐릭터도 몇몇이 등장하며, 영화의 마지막 보스턴 야구 경기장에서 ‘Stay Strong’을 외치는 데이빗 오티스 역시 흑인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 군중의 모습은 하얗기만 하다. 

 <패트리어트 데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가 홍보하던 현장감은 <헥소 고지>의 전투 장면과 비슷한 불쾌감을 선사하고, 인종차별주의자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인종배제적인 태도는 133분의 긴 러닝타임이 공허하게만 느껴지게 만든다. ‘America GreatAgain’이라는 구호가 바라던 모습은 이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10여분 동안 등장하는 실재 인물들의 인터뷰 속 메시지는 너무나 이르게 도착했고, 잘못 연출된 영화의 악영향 때문에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과 평화는‘기득권의’라는 수식어가 필요해 보인다. 제프가 중상을 입은 용의자 타메를란을 한쪽 발로 밟고 무전을 하는 모습을 굳이 풀샷으로 담아낸 쇼트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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