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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6. 2017

영원한 발 없는 새

장국영과 왕가위의 영원한 걸작 <아비정전>


 아비, 발 없는 새는 이제 장국영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진다. <영웅본색> 시리즈, <패왕별희>, <천녀유혼> 등 장국영을 기억할 수 있는 영화는 많지만, <아비정전>처럼 장국영 자체를 담아낸 영화가 있을까? <동사서독>, <해피투게더>로 이어지는 왕가위와의 합작은 물론, <중경삼림>이나 <화양연화> 등의 작품에서도 <아비정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비정전>은 장국영과 왕가위 두 명의 어느 시간을 박제해 놓았다. 아비가 수리진(장만옥)과 만난 4월 16일 3시의 1분을 수리진의 기억 속에 박제한 것처럼. 때문에 <아비정전> 이후의 장국영 영화는 홍콩 반환을 앞둔 세기말 분위기 홍콩의 어느 청년인 아비의 변주처럼 느껴지고, 왕가위의 영화 역시 아비를 비롯한 <아비정전> 속 캐릭터의 변주로 보인다. <동사서독>의 구양봉과 <해피투게더>의 보영은 각각 사막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남겨진 아비의 모습이고, <화양연화>의 장만옥과 양조위는 <아비정전>에서의 그들이 나이 들어 다시 등장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아비정전>은 기억에 남는,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 넘치는 영화이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오프닝과 엔딩에 두 번 등장하는 필리핀의 정글을 담은 쇼트이다. 초록색의 정글이 스크린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른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이 등장하던 이 장면은, 기차 차창에서 바라본 정글의 모습임이 영화 후반부에 드러난다. 수평으로 흘러가는 정글을 보면 마치 하늘을 나는 새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시선은 명백히 필리핀의 기차 창가 자리에서 최후를 맞이한 아비의 시선이다. 영화 속에서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 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라는 아비의 대사가 나온다. 홍콩으로 날아온 발 없는 새는 필리핀으로 돌아가 잠들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4월 16일 3시에 박제된 아비와 수리진의 1분, 4월 1일에 멈춰있는 장국영. 평소에 중화권 영화가 거의 개봉도 하지 않는 한국 극장가이지만, 4월이 되면 어렵지 않게 스크린에서 홍콩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차례 재개봉한 <영웅본색>과 <패왕별희>를 비롯한 장국영의 영화는 만우절 거짓말처럼 떠나간 장국영의 자리를 채워준다. 이번이 3번째 정식 재개봉인 <아비정전>은 이런 영화들의 리스트에서도 유독 빛난다. 장국영의 인생이 압축된 것 같은 아비의 모습은 바람을 타고 스크린에서 계속 날아다닐 것이다. 스크린 속의 장국영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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