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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05. 2017

'랩'을 쓴다고 하지 않고 '라임'을 쓴다고 하는 이유

포에트리 슬램에 관한 영화 <슬램>

*스포일러 포함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 자신이 쓴 자유시를 리듬과 몸집 등을 담아 역동적으로 낭송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슬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크 레빈 감독의 1998년 작 [슬램]은 제목처럼 포에트리 슬램을 담고 있다. 주인공 레이(사울 윌리엄스)는 워싱턴 D.C. 의 남동쪽 슬럼가에 살고 있는 흑인 청년이다. 취미로 '라임'을 쓰고, 대마초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그는, 동네 친구인 마이크(로렌스 윌슨)가 총에 맞는 사건에 연루되고, 대마초를 판매 및 소지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다. 재판을 기다리며 감옥에 수감된 레이는, 마이크의 친구인 하파(본즈 말론)의 갱단에 들어올 것을 제의 받는다. 그러나 레이는 이를 거부하고 감옥 안에서 하파와 다른 갱단이 대립할 때 자신이 쓴 라임으로 슬램을 하여 상황을 종료시킨다. 이를 지켜본 로렌(소냐 손)이 레이에게 자신이 교도소 안에서 진행하는 작문 수업에 올 것을 제안한다. 수업에 참가한 뒤 감명받은 레이는 하파의 도움을 받아 출소한 뒤 로렌을 찾아 슬램 모임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라임을 쓰는 것에 대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만, 재판이 다가오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다. 


 '라임(Rhyme)'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시를 쓰는 방식에서 유래되었다. 더불어 '랩'이라고 하는 예술 방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라임은 시와 랩의 연결고리이고, 시와 랩의 중간에 위치한 포에트리 슬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라임과 리듬을 맞춰 메시지를 전달할 때 시와 랩의 예술성이 생겨난다.

 그렇다고 [슬램]이 라임의 예술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램]은 미국의 래퍼들이 자신의 가사를 보고 '라임을 썼다'라고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영화다. 극 중 레이는 언제나 라임을 쓰고 있다. 레이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 죄수들의 발목에 걸린 쇠고랑과 대마초를 팔고 라임을 쓰는 레이의 모습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는 오프닝부터, 감옥에 수감되어 처음 하는 일이 옆방 죄수와 프리스타일로 라임을 주고받고, 하파를 처음 만났을 때도 종이와 펜을 먼저 요구한 것처럼, 레이는 항상 라임을 쓰고 있었다. 영화에 첫 등장한 레이는 동네의 아이들과 라임을 주고받고 있었다. 라임을 쓰고 슬램으로 이를 표현하는 것은 지옥 같은 슬럼가의 삶 속에서 자신의 꿈과 희망과 욕구 등을 배출해내는 과정이다. 생계를 위해 대마초를 팔 수밖에 없었고, 친구는 총에 맞아 장님이 되는 삶을 라임을 맞춘 비유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슬램 대회에서 잘 드러난다. 로렌과 레이는 각각 자신이 겪었던 삶의 고난에 대해서 슬램을 통해 토해낸다. 로렌은 몸을 팔아 마약을 사던 감옥에 갇히진 않았지만 노예처럼 갇힌 듯이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와 이를 헤쳐나간 소감을, 벽에 기대 있는 자신에게 트럭이 다가온다는 비유를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레이는 살기 위해 대마초를 팔고, 거리의 논리에서 탈출할 생각은 해보지도 않고서 수긍했던 자신의 지난날들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감정들을 라임에 담았다. 그들에게 슬램은, 라임을 쓴다는 것은 자신들을 프로젝트에 가두려는 사람들에 대한 저항이자 돌파구이다. 극 중 레이가 라임을 써 내려가는 장면들에서 항상 신비로운 음악과 함께 그가 라임으로 써 내려가는 소재들을 몽타주로 보여준다. 그가 라임을 써 내려가는 행위 자체를 신비롭고, 독특하게 만들어준다.

 '거리의 시인'이라는 단어로 래퍼를 정의하기도 한다. RAP의 어원이 Rhyrhm And Poerty의 약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포에트리 슬램을 일종의 랩이라고 볼 수도 있다. 래퍼가 무대에서 무반주로 랩을 하는 것을 슬래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래퍼와 슬램을 하는 사람, 시인은 자신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라임에 담아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게 라임은 목소리이자 펜이고, 물감이자 붓이다. 때문에 래퍼들은 랩 가사를 쓸 때 라임을 쓴다고 한다. 그들은 곧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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