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M 트랜스젠더 연기한 엘르 패닝의 <어바웃 레이>
FTM트렌스젠더 레이(엘르 패닝)은 자신의 몸을 남자로 바꾸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 양측의 서명이 모두 필요하다. 혼자 레이를 키우는 매기(나오미 왓츠)는 서명을 위해 그를 떠난 레이의 아빠를 찾아 나선다. 매기의 어머니이자 레이의 할머니인 60대 레즈비언 돌리(수잔 서렌든)은 뒤에서 까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여성감독 게비 델랄이 섬세하고 위트 있게 풀어낸 3대 가족의 이야기는 영화적으론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감정적으로 지지하고 싶어지는 이야기였다.
영화는 “남자 성기가 있으면 어떤 기분이야?”라고 조심스럽게 묻는 매기의 질문에서 드러나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큰 변화 속의 혼란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런 혼란은 등장인물 중 매기만 겪게 된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가진 레이와, 성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커밍아웃해 애인과 함께 살고 있는 돌리의 주관은 확실하다. 물론 돌리 역시 손녀가 손자가 된다는 것에 금세 적응하진 못한다.허나 그들 사이에 낀 헤테로섹슈엘 매기만이 감정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크게 작용하는 것이 매기의 과거사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레이 그리고 돌리와는 다르게 매기는 자신의 과거에 확신이 없다. 레이의 아버지 크랙(테이트 도노반)과 크랙의 동생 메튜(샘 트라멜) 사이의 관계에서 매기는 길을 잃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삶에 확신을 가진 딸과 어머니 사이에서 확신 없이 고민한다. 과거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둘과 달리 매기는 과거에 묶여있다. 사람이 겪는 혼란은 정체성에, 젠더에 묶여있지 않다. <어바웃 레이>는 젠더가 다른 세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며 그들을 같은 선상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영화는 매기의 시선과 동시에 레이의 시선으로도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영화에는 레이가 아이폰으로 촬영한 영상들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고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자신을 Little ‘Man’으로 불러주는 빵집에 단골이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남성적이라고 불리는 직업들에 꿈을 가졌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극 중간중간에 레이가 사람들에 대해 반응하는 표정들이 인상적이다. 레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그를 ‘girl’이라고 칭했을 때의 당혹감, 돌리가 그를 ‘grandson’이라고 불렀을 때의 행복감, 호르몬 주사를 통해 몸까지 자신의 정체성대로 바꾸고 새로운 학교에서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과 지내고 싶어하는 소망까지 영화에 담겨있다. 이사가야 된다는 소식에 “그럼 내가 원피스 입은 것을 보지 못 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는 거네.”라며 기뻐 날뛰던 레이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레이, 매기, 돌리 3대를 연기한 세 배우의 연기가 모두 대단하다. 엘르 패닝은 표정으로 끊임없이 레이를 표현해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사람들이 몰라줄 때의 당혹감이나, 자신의 정체성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의 만족감 등이 입꼬리 하나로 드러난다.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나오미 왓츠는 딸이 아들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충실히 연기한다. 엘르 패닝과 수잔 서렌든의 연기을 받아주는 리액션의 섬세함과 전체적인 톤의 안정감은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수잔 서렌든의 까칠한 연기는 영화에 위트와 유머를 실어준다. <록키 호러 픽쳐쇼>의 수잔 서렌든이 나이 들어 60대 레즈비언으로 출연한다니, 이보다 완벽한 캐스팅이 있을까.
영화에서 레이의 이복동생들, 그러니까 크랙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들은 레이를 보자마자 ‘brother’라고 부른다. 물론 그의 짧은 머리를 보고 한 말이겠지만, 뒤에 이어진 레이가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레이를 ‘she’라고 불렀다 실수를 깨닫고 ‘he’라고 고쳐부르는 매기와 크랙의 모습은 레이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영화 마지막 자연스럽게 모여있는 대가족의 모습에서 <어바웃 레이>의 지향점이 드러난다. ‘자연스러움’. 그것은 관용도 시혜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가족이 가족이라 불리는 모습일 뿐이다.
때문에, 나는 <어바웃 레이>가 막장 드라마스러운 인물관계도를 가져와도, 다소 안일해 보이는 연출들이 보이더라도 이 영화를 지지한다. 트럼프의 혐오발언이 지지를 얻고 승리하는 세상에서, <어바웃 레이> 속 자연스러움을 위해 계속 힘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