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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pr 23. 2017

영웅본색을 잇는 진한 허망함

오우삼의 <첩혈가두>

 친형제처럼 지내던 아비(양조위), 아휘(장학우), 아영(이자웅). 홍콩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한량이지만 언젠가 돈을 모아 벤츠를 몰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던 중 아비의 결혼식 날 세 사람은 구역다툼을 하던 상대 패거리의 사람을 죽이게 되고, 사이공으로 도주한다. 그곳에서 밀수업자로 일하던 그들은 아영의 친척이자 킬러인 아락(임달화)과 함께 나이트클럽을 습격해 금괴를 탈취하고 도주한다. 하지만 월남전이 한창이던 위험천만한 베트남에서 그들은 베트콩에게 붙잡히게 된다. 오우삼의 <첩혈가두>는 욕망과 도주,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뒤섞여 의리와 배신을 이야기한다. <영웅본색> 속 남자들의 이야기가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의 감정을 은유한 것이었다면, <첩혈가두>의 이야기는 오롯이 신파 자체에 할애된다. 월남전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마저 형제애와 배신 속 세 남자의 감정의 진폭을 키우는 장치로 사용된다.

 홍콩 누아르 특유의 허무맹랑하지만 뽀대 나는 총격 액션은 <첩혈가두>에서 비장미를 한껏 끌어올린 채 등장한다. 호텔이나 나이트클럽 등 제한된 공간 안에서 피의 아수라장을 만들던 액션이 넓은 월남의 정글과 강가로 옮겨지면서 액션의 스케일은 격투가 아니라 전투의 스케일로 확장된다. 권총 대신 소총이 등장하고, 지뢰와 수류탄을 비롯한 각종 폭탄들은 마이클 베이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터져댄다. 생존 욕구, 형제애/전우애, 극대화되는 기존의 욕망 등이 뒤섞인 전장이 영화 속에서 펼쳐진다. 오우삼은 이렇게 월남전을 아비, 아휘, 아영 세 사람의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데 사용한다. 역사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인물의 감정을 위해 봉사하는 배경은 매우 효과적으로 관객을 세인물에게 몰입시킨다. 다소 산만하고 급하게 전개되는 전반부의 약점을 중후반부의 액션이 봉합하는 형태를 취한다. 결말부에 다다라서 마무리되는 감정들이 과장되지 않았음을 납득시키는 좋은 장치가 된다.


 아영은 금괴를 가지고 도주하기 위해 아휘의 머리를 총으로 쏜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뒤, 아영은 그 돈으로 사업을 하고 벤츠를 모는 부자가 된다. 드디어 홍콩으로 돌아온 아비는 부인과 재회한다. 그리고 다시 베트남을 찾은 아비는 아락에게 아휘가 머릿속에 총알이 박힌 채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 나선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마약에 절어 생존해가는 아휘의 모습을 본 아비는 분노에 휩싸인다. 아비는 결국 죽고 마는 아휘의 유골을 들고 아영을 찾아간다. 복수와 욕망이 뒤섞인 추격전 끝에 아영의 욕망이 집약된 벤츠는 너덜너덜해진다. 아휘의 유골을 두고 싸움을 벌이는 아비와 아영의 격투 사이에 세 사람의 과거가 교차편집으로 등장한다. 비장미로 범벅된 신파의 극한을 보여주려는 편집은 관객을 지치게 만들 정도이다. 

 어쩌면 다소 허탈할 수도 있다. 어쩌면 오우삼이 <첩혈가두>가 끝나고 남는 감정이 허망함이길 바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영이 아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비는 아영의 머리에 총탄을 박아 넣는다. 땅바닥에 떨어져 불길 속으로 들어간 아휘의 유골은 그 둘을 바라보는 것 같다. 셋의 관계는 파멸에 다다랐지만 결국 홍콩에 돌아오게 된 그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고, 아영의 시신을 끌어안은 아비가 오열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어쩌면 그 진한 허망함이 <첩혈가두>가 <영웅본색>을 잇는 오우삼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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