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자살한다. 그로부터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드라마가 시작된다. 극의 주인공 클레이(딜런 미네트)는 어떤 테이프를 배송받는다. 자살한 소녀 해나(캐서린 랭퍼드)가 자신이 자살한 13가지 이유를 녹음한 테이프들이다. 각 테이프엔 자신을 자살에 이르게 만든 학교의 사람들, 저스틴(브랜든 플린), 제시카(알리샤 부), 알렉스(마일스 하이저), 코트니(미셸 셀린 앙)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테이프를 듣는 사람은 테이프 안에 자신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사람이고, 해나가 테이프를 부탁한 토니(크리스찬 나바로)가 지켜보는 와중에 모두가 테이프를 듣게 되었다. 순서가 돌아 클레이의 차례가 된 것. 테이프의 내용에 충격받은 클레이는 테이프를 쭉 이어서 듣지 못하고, 함께 배송된 지도에 적힌 지점을 돌아다니며 해나의 마지막 기록을 되짚어본다. 일종의 추리극이면서 고등학교 학생들의 청춘 드라마이고, 어느 순간 스릴러적이면서도 사회에 진하게 배어있는 미소지니를 고발하는 드라마이다.
넷플릭스에서 배급된 드라마이기에 13부작이 한 번에 릴리즈 되었다. 그렇기에 관객은 드라마를 주말 사이에 몰아서 정주행 할 수도 있고, 클레이처럼 이야기의 무게에 짓눌려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드라마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제작진이 이 것까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드라마의 모든 회차를 한 번에 릴리즈 한 것은 감상의 속도를 시청자가 조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때문에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보는 과정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자신의 과거를, 혹은 지금을 통째로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클레이가 지도를 들고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해나의 목소리를 따라 사건들을 되짚어간 것처럼, 시청자는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자신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는 과거의 사건들을 훑어보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테이프 속 인물일까?”라는 생각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오른다. 테이프를 이어 듣지 못하고 단발적으로 사건을 쫒아 나가는 클레이의 행동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음과 동시에 클레이와 동일시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강렬하게 기억을 뒤집어 놓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이야기는 결국 고등학교에, 사회 전반에 만연한 미소지니가 여성과 남성을 넘어 다양한 인종과 젠더의 행동 양식을 규정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성을 일종의 트로피로 생각하는 고등학교 운동선수 학생들의 성의식, 유독 여성에게 강하게 따라붙는 사생활 폭로의 위협과 각종 루머로 인한 피해, 여성을 친구나 동료,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성적 대상화가 먼저 튀어나오는 분위기, 만연한 강간 문화 등이 드라마 속에서 등장한다. 이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그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이론적 바탕이 된다. 동시에 “남자라면 이래야지””남자가 가오가 있지”같은 말로 대변되는 맨박스 속에 갇혀 과시적인 행동을 일삼거나 말 한마디 못 하고 손 한 번 건네지 못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까지 풍부하게 다루어진다. 인종과 젠더(퀴어 캐릭터까지 등장한다)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위치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캐릭터 구성과 누구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한 캐릭터 묘사는 위와 같은 이야기를 충분히 설명해낸다. 13개의 다른 이야기일 것으로 보이는 각 에피소드들은 촘촘한 그물처럼 얽혀 해나라는 한 개인의 평판과 의지와 영혼을 좀먹는다. 미소지니에 기반을 둔 캐릭터들의 행동양식은 그물코를 이루는 인물들의 묵인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그들의 침묵을 목격하고, 그 침묵의 주체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자신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최대 강점은 기존 메이저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은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키고 그들을 조명하는 것에 있다. 거의 모든 캐릭터가 퀴어였던 <센스 8>, 아이들이 주인공인 <기묘한 이야기>, 장애인/여성/흑인이 각각 슈퍼히어로가 되는 마블과의 합작 드라마, 인종차별에 대해 직설적인 이야기를 쏟아낸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노년의 캐릭터가 주인공인 <그레이스 앤 프랭키>…… 넷플릭스의 드라마 속 인물들은 단순히 백인과 남성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이와 레즈비언 캐릭터가 등장하고, 동양인, 흑인, 백인, 히스패닉이 당연한 듯이 공존하는 공간이 이 드라마가 그리는 고등학교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미소지니라는 극의 중심이 되는 주제가 다른 비판 점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도한다. “각본이 정말 좋지만 주인공이 OO였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 기간 표류한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그동안 제작해온 드라마와 결을 함께하면서도 플랫폼의 자유도를 적절히 활용한 작품이다.
넷플릭스에서 시청한 드라마뿐만 아니라 최근에 시청한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마음을 뒤집어 놓은 드라마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였다. <아이언 피스트> 같은 실망스러운 작품도 있지만, <겟 다운>나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등 신선하면서도 준수한 완성도와 괴물 같은 매력을 자랑하는 드라마를 쏟아내는 넷플릭스의 괴력은 놀라울 뿐이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그 최전선에 선 작품이며, 이 작품을 다시 볼 용기는 없지만 계속해서 되새김질하고 싶은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