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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n 07. 2017

여성 감독들의 호러 옴니버스 영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XX>

 <XX>는 여성 감독들이 모여 연출한 호러 옴니버스 영화이다. 영화계 전반에 걸쳐 여성 영화인의, 여성 감독의 수가 적긴 하지만, 호러 장르의 경우 여성 감독의 비율이 더더욱 적은 것은 사실이다. 장르소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여성 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호러 영화의 여성 감독 비율은 처참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 <XX>라는 영화가 등장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V/H/S> 시리즈에 참여해온 록산 벤자민, 세인트 빈센트라는 이름의 뮤지션으로 더 잘 알려진 애니 클라크, 데뷔작 <걸파이트>로 이름을 알린 카린 쿠사마, 시각효과 아티스트로 활동하다 잡지 [루 모르그]의 편집장으로도 활약한 요반카 부코비치 등 네 감독이 <XX>에 참여했다. 

 첫 세그먼트인 요반카 부코비치의 <더 박스>는 호기심에 어떤 남성이 들고 있는 박스 안을 들여다본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남자의 선물상자 안을 들여다본 대니(피터 다쿠나)는 그 이후로 아침도, 점심 도시락도, 집에서의 저녁 만찬도 거부하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 아들을 보며 걱정하던 수잔(나탈리 브라운)과 로버트(조나단 와튼)은 그를 병원에 데려가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다. 가족의 원인 모를 거식증을 지켜봐야 하는 수잔의 심리묘사가 공포의 요소로 다가온다. 선물상자 안에 들어있던 것이 무엇이었길래 대니는 거식증에 걸리게 되었을까? 그 원인은 왜 하필 선물상자 안에 들어있었을까? 묘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세그먼트였다. 다만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되는 후반부는 앞선 분위기와는 조금은 다른 결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두 번째 세그먼트인 <생일파티>는 애니 클라크가 연출했다. 마리(멜라니 린스키)는일어나자마자 딸 루시(사나이 빅토리아)의 생일파티를 준비한다. 그러던 중 출장 간 줄 알았던 남편이 방에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알고 보니 의자에 앉아있던 남편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마리는 남편의 시체를 숨기고 루시의 생일파티를 치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선댄스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루스에게 생긴 일>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멜라니 린스키의 열연과 독특한 설정이 금세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서스펜스가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썩 괜찮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마지막의 자막이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엔딩이 즐거운 세그먼트.

 세 번째 세그먼트는 록산 벤자민의 <떨어지지 마>이다. 인적이 없는 산으로 하이킹을 온 네 남녀는 돌로 된 언덕을 오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레첸(브리다 울)은 친구들의 장난에 마음이 상해 밑으로 내려온다. 돌에 긁힌 그레첸은 벽에 그려진 이상한 벽화를 발견한다. 그날 밤, 그레첸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폴(케이시 아담스)이 그를 찾으러 가지만 비명만이 들려온다. <XX> 속네 이야기 중 가장 직선적이며 단순하고 호러 그 자체에 집중한 세그먼트이다. 크리처 호러의 형식을 가져온 이야기는 여러 서프라이즈 장면의 활용을 통해 공포를 선사한다. 조금 더 막 나가는 정신 나간 작품이었다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 세그먼트는 카린 쿠사마의 <그녀의 살아있는 유일한 아들>이다. 아들 앤디(카일 앨런)와 함께 살아가는 코라(크리스티나 커크)는 여러 마을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유는 바로 아들 때문. 현재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아들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마치 사탄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사탄의 자식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로즈메리의 아기>를 재해석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번 작품은 어머니인 코라의 시선에서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 문제는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매듭지어지며 이게 뭐지 싶은 결말로 빠져버린다는 점이다. 


 <XX>는 이렇게 4편의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준다. 모든 이야기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많은 자본이 들어간 영화들에 비해 아쉬운 점도 많다. 단편이기에 이야기를 풀어내다 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좀 더 막 나가는 비주얼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도 남는다. 그럼에도 <XX>가 <V/H/S>처럼 계속 이어지길 바라본다. <생일파티>와 같은 번뜩이는 에피소드를 더 많이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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