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영 감독-정하담 배우의 꽃 삼부작 <재꽃>
2014년 <들꽃>, 2015년 <스틸플라워>에 이은 박석영 감독 연출과 정하담 배우 주연 ‘꽃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들꽃>과 <스틸플라워>에서 가출해 들과 길을 떠돌던 하담(본명 그대로 출연했다)은 <재꽃>에서는 어느 농촌에 자리잡고 있다. 블루베리를 따고, 밭 사이를 달리는 것이 일상인 하담의 앞에 해별(장해금)이 나타난다. 해별은 자신이 하담이 사는 집 근처에 사는 명호(박명훈)의 딸이라고 주장한다. 하담은 해별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그를 챙겨주고, 명호와 주변 사람들은 해별의 등장에 각자 다른 반응을 보인다.
<들꽃>과 <스틸플라워>가 그랬듯, <재꽃> 역시 정하담이라는 배우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전작들과 연결된다. 가출한 하담은 <들꽃>에서 폭력과 착취를 당하고 <스틸플라워>에선 자신의 상황을 타파해보려고 발버둥친다. 자신의 몸뚱이만한 트렁크를 끌며 버려진 집에 몰래 들어가 몸을 뉘이던 하담이 우연히 탭댄스를 알게 되며 자신을 조여오는 세상과 맞설 희망을 얻게 된다. 희망을 얻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가혹한 수난을 안겨야 하는지 <들꽃>과 <스틸플라워> 두 영화 모두 의문점을 남기지만, 그 희망이 정하담 배우를 통해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재꽃>은 그 연장선에서 자기 몸집만한 캐리어를 끌고 가출한 또 다른 아이에게 하담이 위로를 건네는 모습을 담는다.
<들꽃>과 <스틸플라워>의 연결고리가 느슨한 것에 비해 <스틸플라워>와 <재꽃>은 선명한 연결점이 등장한다. <재꽃>의 하담은 <스틸플라워>의 하담이 가지고 있던 탭댄스 슈즈를 가지고 있다. <재꽃>의 하담은 영화 내내 무표정한 전작의 하담과는 다르게 활짝 웃으며 등장하고 타인을 위로할 수도 있으며 말수도 많아졌지만, 해별이 끌고 온 캐리어를 대신 끌며 달리는 하담은 영락없는 <스틸플라워> 속 하담이다. ‘꽃 삼부작’은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고, 홀로 세상과 맞서본 뒤,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스틸플라워>와 <재꽃>의 카메라는 발을 향한다. 터벅터벅 홀로 걸어가는 발, 들판 사이를 달리는 발,탭댄스 슈즈를 신고 춤을 추는 발. <재꽃>의 하담은 명호와 돈을 둘러싼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가로등 밑 아스팔트에서 탭댄스를 춘다. 전작에서 보다 능숙하게 스텝을 밟는다. 이윽고 해별과 신발을 바꿔 신고 함께 춤을 춘다. 전작의 하담이 어색하게 스텝을 밟았던 것처럼 해별도 조심스레 하담의 스텝을 따라 한다.
영화 내내 하담은 달린다. 무언가의 쫓기듯이, 여유로워 보이는 마을의 모습과는 다르게 인물들은 달린다. 덜덜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온 해별은 그 사람들과 다르게 걷는다. 달리는 게 좋다는 하담에게 해별은 “달리면 숨 차서 싫어.”라고 말한다. 쫓아오는 것도 없는데 하담이 계속 달리는 것은 정착 이후에도 하담을 따라오는 듯한 잔상이다. <들꽃>과 <스틸플라워>에서 하담이 겪은 세상의 잔상이 하담에게 남아있기에 달린다. 그러다 해별을 만난 뒤, 해별과 탭댄스를 추고 난 뒤 엔딩에서 하담은 걷는다. 걸어가는 둘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박석영 감독이 ‘꽃 삼부작’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쫓기지 말고 걷자’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재꽃>은 두 전작에 비해 긴 12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해별에게 가해지는 상황의 압박과 수난을 묘사하기 위해 명호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의 묘사와 상황제시가 등장하는데,불필요하게 길고 집요하게 담겨있다. 해별의 등장과 기존에 있던 돈 문제가 결합되어 싸움으로 번지는 명호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관객을 지치게 만든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며 명호의 돈을 빼돌리려 하고, 대화가 아닌 고성과 펄쩍펄쩍 뛰는 몸짓만 보여주는 명호와 인물들은 묘사를 넘어 지루함과 불쾌함으로 다가온다. 결국 해별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제시된 상황은 해별과 비슷한 분량으로 등장하며 관객이 해별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된다. 해별/하담의 감정선과 명호의 감정선을 동시에 담으려 한 시도였다면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