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 세계관으로 들어온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홈커밍>
샘 레이미와 토비 맥과이어, 마크 웹과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에 이어 존 왓츠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극장을 찾았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드디어 MCU에 등장한 스파이더맨의 첫 솔로 영화인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홈커밍이라는 부제에 알맞은 환영식이었다. 그동안 MCU 영화에서 이렇다 할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거나, 단지 기능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인 악역들에 비해 잘 구축된 이번 영화의 빌런 벌처(마이클 키튼)는 ‘홈커밍’한 피터 파커를 돋보이게 만드는 훌륭한 악역으로 작동한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세 번째 스파이더맨을 위한, 스파이더맨의 두 번째 리부트를 위한, MCU로 들어온 스파이더맨을 위한 만족스러운 환영식이다.
영화는 <어벤저스>의 치타우리 종족 침공 직후 시점에서 시작한다. 가족과 동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투의 잔해를 치우는 역할을 맡은 툼스는 토니 스타크에 의해 그 자리마저 빼앗긴다. 몰래 빼돌린 외계 물질로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음지에서 무기를 만들어 팔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8년 뒤, 시빌 워 이후의 시점에서 어린 스파이더맨의 일상이 시작된다. 학교 실험실에서 몰래 거미줄 용액을 만들며 스타크 인턴쉽을 핑계로 방과 후 내내 스파이더맨이 되어 돌아다니는 피터 파커의 수다스러운 일상이 그려진다. 어벤저스의 부름을 기다리는 초짜 영웅 스파이더맨은 우연히 툼스 일당이 외계 무기를 거래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들을 잡으려 하지만, 벌쳐 무기를 장착한 툼스에 의해 위기에 처한다.
이전 스파이더맨과는 다른 지점들이 우선 눈에 띈다. MJ, 그웬 스테이시와의 로맨스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하이틴 코미디의 외피를 빌려 초짜 동네 영웅이 어벤저스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로맨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생의 추억 정도의 비중으로 남겨두는 영화의 선택은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를 상쇄할만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스페이스 오페라나 첩보물, SF 판타지 등의 장르 틀을 가져와 영화를 풍부하게 만들었던 MCU의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이번 영화는 하이틴 코미디 장르의 틀을 가져오면서도 그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피터가 친구인 네드(제이콥 베덜런)와 함께 있을 때면 장르적 색채가 드러나지만, 슈트를 입고 활동하거나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함께하는 장면에선 슈퍼히어로 장르 자체에 집중하며 새로운 히어로를 환영하고 소개하는데 매진한다. 로맨스 대신 토니 스타크와 피터 파커의 유사 부자관계를 그려낸 선택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모두가 아는 스파이더맨의 전사, 가령 벤 삼촌의 죽음이나 거미에 물려 능력이 생긴 이야기 등은 대사를 통해 간단하게 처리되며 전개에 속도를 더하고 성장담에 집중을 더한다.
빌런인툼스, 벌처의 활약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의 기본 조건은 좋은 빌런이다. 그동안 <토르> 시리즈와 <어벤저스>의 로키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제모 정도를 제외하면 인상적인 빌런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 MCU에서 오랜만에 캐릭터 구축이 잘 된 빌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가장 좋은 장점이다. 영화 중반 피터 파커와 툼스가 마주치는 한 장면에서 마이클 키튼의 무시무시한 연기와 이를 받아주는 톰 홀랜드의 연기는 좋은 빌런이 좋은 히어로의 토대가 된다는 명제의 증거로 작용한다. 동시에 의외로 두 배우의 연기 합 역시 좋아 서로의 캐릭터를 끌어올려준다. 감정적으로 단순하지만은 않은 퇴장까지 보여주는 빌런, 벌처는 MCU는 물론 최근의 슈퍼히어로 장르,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악역 중 하나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나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이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예고된 것처럼 메이 숙모(마리사 토메이)는 배우의 매력을 이용한 아이 캔디로써만 기능한다. 피터 파커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리즈(로라 해리어)는 단순한 연애 대상인 캐릭터를 벗어나 보려다가 만 캐릭터인 것처럼 그려진다. 만들다 만 캐릭터처럼 그려진다고 해야 할까? 미셸(젠다야 콜먼)은 중요한 캐릭터처럼 홍보되었지만 배우가 제대로 연기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분량뿐이다. 속편에서 그의 캐릭터가 어떻게 그려질지에 대한 암시가 등장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제대로 활용해볼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메이 숙모는 퀸스 동네 사람들의 아이캔디로, 리즈는 피터와 네드의 아이캔디이자 연애 대상인 납작하고 기능적인 캐릭터로, 미셸은 존재감 자체가 없는 캐릭터로 남았다. 물론 등장인물이 많아 분량을 나누기 어려웠겠지만, 해피(존 파브로)와 같은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보다 떨어진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아이언맨이 종종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등장하 스파이더맨을 구하는 몇몇 장면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나 <닥터 스트레인지>에 비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이다. 7월에 개봉하는 여름 블록버스터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이 영화는 MCU에 대한 피로감이 끝없이 쌓여가는 와중에도 기본적 인재 미를 제공한다. 하이틴 코미디 장르를 가져왔음에도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이야기와, 톰 홀랜드라는 새로운 얼굴이 주는 매력, 오랜만에 만나는 블록버스터 영화 속 매력적인 악역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보고 나서는 관객의 표정을 환하게 만들어준다. <데드풀>의 쿠키영상을 연상시키는 두 번째 쿠키영상까지 보고 극장을 나서면 재밌는 영화 한 편 봤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