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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8. 2017

밀실과 미스터리라는 숨 막히는 조합

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제인 도>

 어느 젊은 여성의 시체가 부검소에 실려온다. 부검의인 토미(브라이언 콕스)와 그의 보조이자 아들인 오스틴(에밀 허쉬)은 시체 부검을 의뢰받는다. 꽤 오래된 시체임에도 지나치게 깨끗한 외형에 의문을 품은 부자는 본격적으로 부검을 시작한다. 신원미상이기에 제인 도(Jane Doe)라고 이름 붙여진 시체는 부검할수록 사인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 미스터리만을 더해간다. 영화 <제인 도>는 86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관객을 몰아간다. 시체 부검이라는 독특하고 흥미로우면서도 끔찍한 소재와 밀실 스릴러라는 장르, 여기에 영화 중후반부가 돼서야 밝혀지는 호러의 어느 장르적 요소를 적절히 배합한 각본과 연출은 소재를 다루는 솜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이번 영화를 통해 파운드푸티지 괴수영화였던 <트롤 헌터>와 단편 호러 <터널>을 거쳐 <제인도>를 내놓은 안드레 외브레달 감독의 탁월한 연출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의 플롯은 굉장히 단순하다.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깨끗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 시체를 부검하는 과정에서 시체 속 미스터리가 드러난다. 영화는 86분의 러닝타임에서 초반 10여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부검소 안에서 진행된다. 토미와 오스틴이 스스로 시체가 있는 밀실로 들어가며 시작되는 밀실 스릴러인 셈이다. 영화 초반부, 오스틴은 일터를 찾아온 여자친구 엠마(오필리아 로비본드)에게 부검소를 보여준다. “보면 후회할지도 몰라”라는 이야기와 함께 부검실 안의 도구들과 시체를 구경시켜주는 오스틴의 모습은 그 속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게 될 자신의 미래를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엠마와의 데이트 약속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돕기 위해 오스틴이 부검소로 돌아오면서, 영화의 세팅이 끝나고 본격적인 공포와 긴장이 시작된다.


 영화가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법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깔끔하게 설계되어 있다. 카메라는 부검하는 토미의 모습과 부검되어 살과 내장이 드러난 시체, 그리고 회색으로 변한 제인 도의 눈을 계속해서 번갈아 보여준다. 시체의 눈을 관찰한 뒤 눈을 감겨주지 않고, 입 안을 관찰한 뒤 입을 닫지 않은 채 두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시체가 되살아나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긴장감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서프라이즈 씬을 통해 관객을 놀라게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조금씩 쇼트의 수를 늘려가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탁월하다. 가령 초반의 서프라이즈 씬은 ‘인물의 옆모습-문틈 사이로 보이는 것-조금 더 클로즈업된 인물-다시 문틈 사이’ 정도의 구성이라면 후반부의 서프라이즈 씬은 그 사이의 쇼트 수를 늘려가며 긴장감이 도는 시간을 늘려간다.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서프라이즈 씬이지만 놀람의 순간 직전까지 긴장감을 쌓아가는 솜씨는 <제인 도>가 선사하는 공포의 주요한 전략이다.

 소재가 부검이다 보니 고어의 수위가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고어의 잔인함 자체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인 도>는 독특한 작품이다. 잔인함을 위한 불필요한 고어 장면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잔인하기만 한 다른 영화들과 <제인 도>는 다르다. 영화 스스로의 설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모호하게 남겨버리는 후반부는 아쉽지만, 짧은 러닝타임 동안 집중력 있게 몰아치는 영화의 힘은 극장을 나서는 관객을 탈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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