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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19. 2017

컬트는 유희적 정신으로 충만한 무심함에서 나온다

러스 메이어의 섹스플로테이션 컬트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

 가장 성공한 영화 마니아의 이름을 말하라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름이 제일 처음 떠오른다. <킬 빌>, <재키 브라운>, <펄프 픽션>과 같은 그의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취향의 범주에 속한 모든 영화를 뒤섞어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마이너 장르의 변주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들의 모자이크와 같았다. 타란티노의 5번째 장편영화이자 그라인드 하우스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데쓰 프루프>는 한 영화에 바치는 그의 고백이자, 한 작품을 경배하는 최고의 방식이다. 그가 <데쓰 프루프>를 통해 찬양해 마지않은 작품은 바로 B급 섹스플로테이션 필름의 거장 러스 메이어의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이다. 드넓은 사막에서 매끈한 자동차를 몰며 질주하는 여성, 전형적인 팜므파탈 캐릭터처럼 행동하다가도 여차하면 남성과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 한 남성을 여러 여성들이 둘러싸고 다구리 놓는(?) 장면 등은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의 인장과도 같은 장면이자 <데쓰 프루프>에서도 반복되는 장면이다.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는 세 명의 고고 댄서가 일을 마친 뒤 스포츠카를 타고 사막을 달리는 모습에서 시작한다. 발라(투라사 타나), 로지(하지), 빌리(로리 월리엄스)는 사막에서 어느 남자를 만나 자동차 경주를 벌이고, 다툼 끝에 그를 살해하고 만다. 그의 애인 린다(수잔 버나드)를 납치해 돈을 벌어보려는 그들은 근처의 농장으로 숨어들고, 농장의 세 남자와 이런저런 이해관계로 얽히게 된다. 린다를 제외하면 악역과 선역을 구분하기 어려워진 상황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기존의 성역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전개된다. 가령 팜므파탈적 매력을 뽐내고 세 여성의 몸을 훑던 카메라는 뒤이어 농장주의 둘째 아들의 근육질 몸매를 애무하듯 훑는다. 또한 영화에서 가장 수동적인 캐릭터는 가장 테스토스테론이 넘쳐 보이는 근육질의 남성이며, 집안에서 요리를 내오는 사람 역시 여성이 아닌 남성이다. 또한 남성과 대등한 위치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여성의 모습은 60년대 영화에서 처음 만나보는 것 같다.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는 페미니즘적으로 많은 해석이 오가고 있지만, 사실 러스 메이어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캐릭터들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당연히 페미니스트가 아니었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미소지니스트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준다. 때문에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식적인 결과물이라기 보단,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어 보기 위한 소재 선택의 결과물로 보인다.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고 흥미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보기 위한 시도 중 하나랄까? 영화는 에스트로겐이 넘치는 팜므파탈적인 고고댄스의 오프닝을 거쳐 테스토스테론 넘치는 육탄전으로 마무리된다. 컬트는 유희적 정신으로 충만한 무심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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