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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22. 2017

신선하지만 영화를 지탱하지 못한 아이디어

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데이브 미로 만들다>

 <데이브 미로 만들다>는 신선한 시놉시스와 직접 골판지 상자를 자르고 붙여 만든 거대한 세트, 미셸 공드리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아날로그 특수효과 등을 동원해 만들어진 독특한 비주얼의 작품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애니(미라 로힛 쿰브하니)는 집 거실에서 박스로 만들어진 미궁을 발견한다. 남자친구인 데이브(닉 순)가 주말 동안 만들어낸 골판지 박스 미궁 속에서 스스로 길을 잃고 말아버린 것.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던 애니는 어렵사리 만들어낸 미궁을 부시지 말아달라는 데이브의 부탁에 친구 고든(아담 부쉬)을 부르고, 아담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해리(제임스 얼바니악)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부른다. 고민 끝에 미궁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애니와 친구들은, 거대한 미궁의 모습에 감탄한다. 그러던 중, 부비트랩을 밟은 친구 한 명이 죽게 되면서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유형의 영화들이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당차게 영화를 시작해 아이디어의 힘을 보여주지만, 길지 않은 러닝타임임에도 중반부터 무너져내려 후반부는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영화. <데이브 미로 만들다>는 정확히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이다. 읽어보기만 해도 흥미진진한 시놉시스는 영화의 초반부만을 지탱할 뿐, 81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온전히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영화의 초반 30~40분가량은 재기발랄하고 흥미진진하다. 박스로 만든 미궁에 스스로 갇혀 버린 데이브가 기다리는 집에 돌아온 애니가 느꼈을 당혹감은 박스 미궁의 해괴한 비주얼 덕분에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미궁에 들어선 뒤 등장하는 온갖 비주얼, 거대하고 살아 움직이는 종이학, 부비트랩으로 잘린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대신하는) 붉은 종이조각들, 트릭아이를 이용한 장면, 인물들이 종이인형으로 잠시 변하게 되는 장면 등이 난생처음 보는 비주얼과 함께 구현된다. 다소 황당한 설정만 납득하고 나면, 영화의 초반 30~40분 정도는 즐겁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빌 워터스 감독을 비롯한 수십 명의 미술팀이 골판지 박스로 직접 만들어낸 세트의 위용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고 정확히 인물들이 종이인형으로 변했다 돌아오는 순간부터 영화의 이야기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데이브 미로 만들다>의 가장 큰 패착은 이야기에서도 유머에서도 리듬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부부터 꾸준히 이어지는 유머들은 극 중에서 유머를 던지고 관객들이 웃게 되는 그 사이에 적지 않은텀을 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텀은 유머와 이야기를 늘어지게 만들고, 유머 자체의 타율도 떨어트린다. 신선한 설정으로 밀고 나가던 초반부의 활력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황당함으로 바뀌어간다. 소년만화적 황당함의 범위를 넘어서는 전개는 점점 유치하고 지루해져만 가며, 수십 분의 러닝타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 박스 미궁의 비주얼은 더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마무리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처럼 헤매는 영화는 데이브의 대사처럼 “그냥 만들고 싶어서 만든”영화이고, 그렇기에 박스 미궁처럼 미완성의 상태로 급하게 마무리된다. 


 어쩌면 <데이브 미로 만들다>의 아이디어는 콤팩트 한 단편으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아이디어였을지도 모른다. 애니와 친구들이 데이브를 구출하기 위해 미로에 들어서고, 미노타우르스를 만나 싸우는 것까지를 이야기 삼아 30~40분 정도의 단편으로 만들었다면 조금 더 알찬 영화로 남지 않았을까? 박스 미궁 세트의 놀라운 완성도를 보고 있자면 무너진 영화의 이야기가 더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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