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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ul 22. 2017

배드씬에 감정을 담아내다

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빌로우 허 마우스>

 지붕공사 일을 하는 레즈비언 달라스(에리카 린더)는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재스민(나탈리 크릴)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재스민은 함께 사는 애인 라일(세바스찬 피곳)과 약혼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서로 한눈에 반한 둘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금지구역 섹션에 초청된 (왜 금지구역이지는 전혀 모르겠다) <빌로우 허 마우스>는 달라스와 재스민의 강렬한 며칠간의 사랑을 그린다. 에이프릴 뮬런 감독을 비롯한 여성 스텝과 여성 배우들이 만들어낸 작품으로, 기본의 레즈비언 섹스신이 등장하는 여타 영화들보다 조금 더 섬세하게 여성의 시점과 오르가즘을 그려낸 작품이다. 

 남성 감독이 연출한 여성 주연 퀴어영화의 섹스신은 꾸준히 비판받아왔다. 여성들 간의, 혹은 여성이 중심이 되는 섹스씬임에도 남성의 시선으로 촬영되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박찬욱의 <아가씨> 등 레즈비언 섹스씬이 등장하는 남성 감독의 영화는, 감독이 의식적으로 메일 게이즈(Male Gaze)를 배제하려 한다고 해도, 남성 중심적 시각이 반영된 섹스씬이며 이는 일정 부분 여성을 착취하게 된다.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인 톰 후퍼의 <대니쉬 걸> 역시 MTF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여성임을 느끼기 위해 스트리퍼의 몸동작을 따라 하는 장면 역시 비슷한 이유로 비판받았다. <빌로우 허 마우스>의 섹스씬 역시 여기서 100%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빌로우 허 마우스>의 섹스씬은 착취적이지 않고, 레즈비언의 섹스씬을 단순한 스펙터클로 활용하며 전시하는 대신 인물의 감정과 동화된 촬영으로 깊은 감정선을 만들어낸다. “여성의 오르가즘을 영화적으로 담아냈다”는 어느 평은 이 영화를 가장 잘 요약하는 평가가 아닐까 싶다.

 94분의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임에도 섹스씬의 분량이 30~40분가량 된다. <빌로우 허 마우스> 속 섹스는 단순한 오르가즘의 쾌락이 아닌 달라스와 재스민의 감정선을 설명하고 관객이 깊게 그들의 감정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만들어주며,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감정에 동참한 관객이 지칠 정도로 몰입하도록 해준다. 때문에 영화 속 섹스씬은 단순한 쾌감의 스펙터클로 존재하는 대신 중요한 영화적 도구로 기능한다.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기도 하고, 가끔은 인물과 동화되어 상대방을 애무하듯 이어지는 촬영은 두 인물의 감정을 따라 흘러간다.


 달라스를 연기한 에리카 린더는 <빌로우 허 마우스>가 연기 데뷔작이다. 본래 모델로 활동하던 그는 중성적인 외모를 통해 매력적인 화보를 선보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속 그의 연기는 첫 연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우며, 자신의 매력을 완벽히 파악한 채로 재스민에게 접근해 플러팅 하는 모습은 새로운 영화 스타의 시작을 보는 것과 같았다. 여러 TV 시리즈와 작은 영화들에 출연해오던 재스민 역의 나탈리 크릴의 연기 또한 <빌로우 허 마우스>의 감정을 풍족하게 만들어준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재스민이 생에 가장 강렬하게 느꼈을 감정을 드러내고 관객을 동참시키는 것은 대단한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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