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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끊어야할 서부극 시대의 고리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현대 서부극 <로스트 인 더스트>

*스포일러 주의


데이빗 맥켄지 감독의 신작은 코맥 맥카시의 작품들을 닮았다. 황량하고 끝없어 보이는 공간 속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최대한 적은 색으로 표현된 영화 속 텍사스의 모습은 코맥 맥카시의 소설 속 배경들과 닮았다. 간간히 등장하는 유머와 배경이 텍사스임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컨트리 음악이 아니었다면 그의 작품이 원작인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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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로스트 인 더스트>가 코맥 맥카시의 소설 같다는 이유는 영화가 가진 태도에 있다. 영화에는 가난을 대물림 받았고 이를 끊기 위해 은행 강도가 된 텍사스의 카우보이 스타일 백인 테너(벤 포스터)와 토비(크리스 파인) 하워드 형제, 그들을 잡으려는 백인 경찰 해밀턴(제프 브리지스)과 인디언/멕시칸 혼혈 알베르토(길 버밍햄)이 등장한다. 영화는 테너와 토비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백인들(굳이 텍사스의 카우보이를 주인공으로 정한 것은 명백히 백인을 지목한 것이다)을 어떻게 죽이는지를 보여주고, 해밀턴과 알베르토가 주고받는 농담들 속엔 19세기 서부시대부터 이어진 인디언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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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로스트 인 더스트>는 같은 땅을 다른 계급, 인종의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드러내는 영화이다. 하워드 형제에게는 자신의 농장에서 석유가 발견됐음에도 범죄를 저질러 돈을 마련하지 못 하면 은행에 그 것을 빼앗기게 될, 그들이 가난을 물려받은 땅이다. 알베르토는 같은 땅을 보며 150년 전 인디언들이 살던 땅이고, 인디언들이 백인들에 의해 땅을 잃었음을 기억해낸다. 백인의 침략에 땅을 잃은 인디언의 기억과 자본의 침략에 땅을 잃을 위기인 백인의 상황을 병치시키며 미국의 현재를 드러낸다. 하워드 형제가 떠안은 가난의 대물림은 알베르토의 조상들이 겪은 침략 피해가 대물림된 것이다. 그 주체가 물리적 폭력에서 자본의 폭력으로 변했을 뿐이다. 그 땅에 누가 살든, 그 곳의 가장 약한 사람이 침탈의 피해자가 된다. 심지어 토비의 농장에 석유가 묻혀있음에도 말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하워드 형제와 알베르토의 기억은 결국 땅을 침략당하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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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물들의 기억 외에도 영화의 이미지로 땅의 기억을 보여준다. 드넓은 들판에 불이 붙어 연기가 나는 모습이 영화 내내 반복해서 드러나고, 들판의 불길에 카우보이들은 여전히 말을 타고 소떼를 몬다. 시내의 사람들은 90%가 중년 이상의 연령대이다. 나이든 텍사스 시골의 모습은 코맥 맥카시의 소설 『더 로드』의 배경처럼 황량하게 불타오른다. 원인 불명의 불길은 한바탕 전투가 지나간 것처럼 연기를 내뿜는다. 침략에 침략을 거듭한 땅은 “스테이크 한 장도 안 나올 것처럼 마른 소들”이 가득한 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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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가난과 침략의 고리를 끊는 방식으로 폭력을 제시한다. 하워드 형제의 폭력은 침략의 가해자인 은행을 향하고 있다. 아래에서 위를 겨냥한 폭력, 즉 침략의 시스템에 대한 반항인 것이다. 무려 석유가 나는 땅을 가지고 있음에도 고리를 끊는 방법은 폭력, 은행 강도라는 범죄행위뿐이었다. 하워드 형제는 그 시스템을 역으로 침략하고 시스템을 이용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후반부에 그려지는 폭력의 방향이다. 영화의 후반부, 경찰의 추격을 받는 테너는 라이플로 알베르토를 쏴 죽인다. 그 후 테너는 해밀턴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인디언(알베르토)의 땅을 침략한 백인(테너)인 인디언을 죽였고, 공권력(해밀턴)이 침략의 폭력을 다시금 엄벌한다. 침략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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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에서 해밀턴은 토비의 농장을 찾아 그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는 서로가 서로의 방법이 미국을 위해 옳았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가족을 위해”라는 말은 ‘미국을 위해’라는 말로 묘하게 대치된다. 주체는 계속 바뀌지만, 미국 땅 안에서 반복되는 침략을 끊기 위한 방법으론 하워드 형제의 방법이 옳을까, 해밀턴의 방법이 옳을까? 영화의 마지막 쇼트는 농장을 떠나는 차를 따라 패닝하면서 석유시추기들을 비춘다. 이내 카메라의 시점이 낮아지면서 밝은 햇빛을 밭는 곡식들을 보여준다. 토비의 아이들이 살게 된 농장을 토비와 해밀턴은 떠나간다. 방법이야 어쨌든, 연기가 치솟던 황량한 땅에서 곡식이 여물어가고 있다. 서부극의 시대부터 이어진 고리를 끊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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