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분노를 토해내는 펑크 <노후 대책 없다>
제목부터 느낌이 온다. <노후 대책 없다>. 한국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D.I.Y 펑크밴드 ‘스컴레이드’와 ‘파인 더 스팟’이 일본의 하드코어 펑크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다. 알 사람은 이미 다 알지만 모를 사람들은 평생 모를 두 펑크밴드의 이야기를 스컴레이드의 보컬 이동우가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시끄럽고 욕설 가득한 음악과 생활일지 몰라도, 그들은 아무 생각 없는, 흔히 말하는 철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존나게 공부하고 존나게 스펙쌓고 존나게 취직하고 존나게 죽어”야 되는 대한민국에서 노후 대책 없이 기타와 드럼스틱을 들고 마이크와 앰프에 분노를 토해내게 된 이유가 뭘까? <노후 대책 없다>는 두 밴드를 가까이서 담으면서 노후 대책 없는 이유를 유쾌하게 담는다.
파인 더 스팟의 보컬 송찬근은 자신이 펑크를 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학교에서 맨날 선생한테 쳐 맞고 그랬는데 펑크는 그걸 욕하더라. 그게 멋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펑크들은 펑크를 “분노가 존나게 쌓여서 그것을 보여주는 음악”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이 왜 분노하게 됐는가. 몇 달을 일한 돈이 6일의 여행으로 다 날아가버리고, 맨손으로 시위에 나가면 불법폭력집회라는 딱지가 붙어 영장과 벌금이 날아온다. 존나게 공부하고 스펙쌓고 취직해도 노후 대책은 없다. 어차피 노후 대책 없는 거, 그들은 목소리를 낸다.
영화를 보기 위해 펑크에 대한 사전지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사실 나도 펑크 하면 크라잉넛 밖에 모르는 문외한이다. 사실 노후 대책 없다고 외치는 영화에 사전지식이 필요할까. 스컴레이드와 파인더스팟,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밴드들의 음악(등장하는 밴드 중 가장 유명한 밴드가 ‘단편선과 선원들’)은 마이너 할지라도 그들의 이야기는 나이, 젠더, 국가의 구별이 없다. 애초에 펑크가 지향하는 것도 그 지점이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고 당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LGBTQ인지도 상관 없으며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유럽인인지도 상관 없다. 그들이 외치는 이야기는 옳지 않은 것에 대한 저항이고, 모든 부당한 것들에 대한 거친 분노다. 보편적인 분노를 가장 순수하게 표출한다.
영화는 파인더스팟의 드러머가 탈퇴하고 잠시 휴지기를 가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휴지기 동안 밴드 멤버들은 각각 다른 곳에서 음악활동을 이어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보컬 송찬근의 마지막 공연이 서울시청 앞 농성장이라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