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안드레아 아놀드의 <아메리칸 허니>
스타(샤샤 레인)는 어쩌다 떠맡은 두 아이, 착취적인 남자 친구와 함께 살아간다. 영화의 첫 장면은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찾는 스타와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던 중 마트에서 우연히 제이크(샤이아 라보프)와 그의 무리를 만나게 된다. 제이크는 스타에게 자신들이 잡지를 방문 판매하는 사람이라며 이제 캔자스로 떠날 것인데 혹시 합류하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제안한다. 스타는 그들과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다. 스타는 무리의 사장과도 같은 크리스털(라일리 키오)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미국을 돌아다니며 낮에는 잡지를 팔고 밤에는 파티를 벌이며 사는 모습이 좋다. 로드무비에서 접하기 힘든 1.37:1의 독특한 화면비, 끊임없이 이어지는 트랩과 래칫 힙합, 컨트리 음악, 좁은 벤과 흥겹게 날뛰는 사람들을 잡아내는 핸드헬드 등은 <아메리칸 허니>의 개성이자 스타의 개성이고 그를 연기한 샤샤 레인의 개성이 된다.
<아메리칸 허니>는 돈은 없지만 자유로운, 술과 대마초와 섹스를 자유롭게 누리면서 살아가는 21세기의 히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시에 그들은 돈에 묶여있다. 스타가 제이크와 크리스탈의 무리와 함께하게 된 것에는 물론 시궁창 같은 오클라호마에서의 삶을 벗어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금전적인 이유 역시 크다. 스타가 제이크를 처음 만나 대화한 내용은 사실 자유보다는 금전적인 것(“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나 보네요?” “얼마나 벌 수 있죠?” “하루에 많게는 300불”)에 대한 이야기만이 오간다.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난 스타의 여정은 아메리칸드림을 찾아온 이민자의 여정과도 같다. 그러나 녹록하지 않은 미국은 그에게 온전한 자유도, 제대로 된 돈벌이도 보장하지 못한다. 숙식을 제공해 준다는 미명 하에 무리의 자본가 크리스탈은 스타를 사실상 착취하려 하고, 밤마다 벌어지는 파티와 즐거움을 보장하는 몇몇 규칙(“리아나의 노래가 나오면 다 같이 리듬을 타는 거야”)은 눈속임처럼 유희를 제공한다. 꿀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따라나선 사람들을 ‘아메리칸 허니’라고 부르며 꼬드기는 격이랄까? 스타가 처음으로 잡지를 판매하고 400달러를 벌게 되는 장면(포스터의 그 장면)은 <월플라워>의 터널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자유로움과 기쁨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돌아간 크리스탈의 무리는 독단적으로 만들어진 규율과 따르지 않으면 버려질 것이라는 암시로 가득하다.
스타는 잡지를 팔기 위해 남자들의 차를 얻어 탄다. 남는 건 돈과 시간뿐이라는 중년의 백인 남성의 스포츠카, 배를 타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운전수의 트레일러, 여기서 일하는 모두는 부자라며 자신과 하룻밤 놀아주면 500달러를 주겠다는 유전 노동자의 트럭 등이 스타가 영화 속에서 거쳐간 차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로드무비의 전형성, 성폭력을 당하는 장면 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러나 스타는 남성들과 대결을 벌이고, 때로는 동조해주며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쉽게 내어주지 않으며 선을 긋기도 한다. 때문에 <아메리칸 허니>는북미 대륙을 개척한 남성 구(舊) 이민자들의 길을 다시 한번 따라가는 여성 신(新) 이민자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백인 부자동네를 지나 가축 공장을 들리고 유전까지 거쳐가는 스타의 여정은 미국의 개척사를 비백인 여성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내 꿈은 여길 벗어나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운전수, 트레일러에 갇힌 소들의 모습과 가축 공장에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에 발이 빠진 스타의 모습을 이어 보여주는 장면은 이러한 착취의 역사를 은근슬쩍 스타의 여정에 끼워 넣는다. 때문에 <아메리칸 허니>에는 아메리칸드림의 꿀맛을 잠시 맛본 환희의 아름다운 순간과 개척의 역사-착취의 역사로 이어지는 섬찟한 순간들을 동시에 담아낸다.
<아메리칸 허니>는 상당히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샤샤 레인은 영화 속 스타처럼 길거리에서 캐스팅된 배우이고, 그와 샤이라 라보프 등을 비롯한 배우들은 실제로 벤을 타고 미국을 누비면서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의 대부분이 벤 안에서의 장면이거나 영화 전체가 핸드헬드로 촬영된 것 역시 즉흥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때문에 영화 속 몇몇 장면은 종종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늘어지기도 한다.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아니었다면 162분의 긴 러닝타임을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크리스탈의 무리가 계속해서 거처를 옮기는 떠돌이 집단이기에 이러한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이 다시 써 내려간 미국의 개척사와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이야기는 거친 즉흥성만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몇몇 장면만은 간직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