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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Aug 01. 2017

뒤엉킨 류승완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괴상한 영화

 132분의 러닝타임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군함도>는일본인/앞잡이 조선인에게 속아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 섬 석탄 탄광에 강제 징용된 이강옥(황정민), 최칠성(소지섭), 오말년(이정현) 등을 비롯한 조선인들이 그곳에 억류된 독립운동가 윤형철(이경영)을구하러 온 광복군 박무영(송중기)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류승완 감독은 이 단순한 이야기를 온갖 스펙터클로 채워낸다. 거대한 군함을 연상시키는 하시마 섬의 전경을 훑고 개미굴 같은 탄광을 비집고 들어가는 카메라, 마이클 베이의 전쟁영화가 연상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 시퀀스, 재난영화에 가까운 폭격 장면 등은 220억에 달하는 제작비의 용도를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스케일은 일제 강점기 희생자들의 고통을 그저 스펙터클로 소비하는데 그친다. 액션, 전쟁, 첩보 등 여러 장르영화의 요소를 끌어와 군함도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군함도를 단지 배경으로 소비하면서 단순 오락영화로 만들어내는 태도는 역사의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착취한다.

 영화의 첫 액션 시퀀스인 최칠성과 송종구의 목욕탕 격투에서 <군함도>의 액션 스타일이 드러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짝패> 등을 만들어온 류승완 감독이 가장 잘 만드는 액션 시퀀스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영화 속 액션은 서사 속에서 가지는 효과보다 스타일에 치중한다. 애초에 이강옥을 비롯해 최칠성, 오말년 등의 인물이 가진 서사가 빈약하고, 불필요한 플래시백(특히 위안부로 끌려갔었다는 오말년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과 지루하게 긴 대사로만 인물을 쌓아 올리는 방식은 캐릭터 자체를 납작하게 만든다. 후반부 이강옥, 박무영 등의 입을 통해 나오는 ‘사이다’ 대사를 위해 캐릭터를 움직이게 한다. 강옥의 딸 소희(김수안)는 그저 이강옥을 행동하게 만드는 요소로만 등장하며, 위기를 손쉽게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캐릭터가 작동한다. 액션을 수행하는 캐릭터들이 이렇다 보니, 어떤 액션을 수행하더라도 그저 겉멋 든 스타일을 넣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며, 처절함과 사이다성 대사를 뒤섞은 조연, 단역들의 대사들로 감정선을 보충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지겨워진다. 그렇기에 <군함도>에서 남은 것은 표면적인 액션의 스펙터클 뿐이며, 역사의 희생자를 다시 스크린에 소환해 스펙터클을 위해 다시 한번 소비하는 것은 보통의 역사관과 윤리관으로 포용하는 범위를 벗어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석양의 무법자>의 OST로 사용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The Ecstacy of Gold"가 흘러나오는 액션 하이라이트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액션 활극 스타일의 전쟁영화를 만들고 싶은 자아와, 소재를 진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의식의 자아가 류승완의 머릿속에서 뒤섞여 만들어낸 괴상한 광경이 <군함도>라는 영화를 축약해서 보여준다.

 역시 류승완 감독인 만큼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활용 역시 끔찍한 수준이다. 감독은 아마도 오말년의 캐릭터를 <암살>의 안옥윤과 같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의 머리채를 잡으며 위협하는 최칠성의 성기를 움켜쥐며 대응하는 첫 등장이나, 장총을 들고 일본군을 쏘는 모습 몇 장면을 통해 이를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안옥윤과 같은 캐릭터는 단순히 멋져 보이는 몇 장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말년의 캐릭터는 영화 속 다른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빈약하고 지루한 설명만으로 캐릭터를 쌓아 올리려다 실패하고, 여기서 한술 더 떠 <귀향>의 위안소 부감숏만큼 끔찍한 장면들을 고통의 스펙터클로 전시한다. 캐릭터를 설명한답시고 넣은 불필요한 플래시백은 오히려 불쾌감만 남긴 채 캐릭터를 착취한다. 애초에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이다’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 덩어리인 셈이다. 소희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그를 연기한 김수안의 연기는 공산품 같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지만, 그뿐이다. 많은 연출자가 여성 캐릭터와 그를 보호하는 캐릭터를 가장 손쉽게 위기에 빠트리는 방법으로 성폭력을 동원하곤 하는데, <군함도> 역시 이러한 손쉬운 방법을수 차례 반복하는 게으름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군함도>는 좋은 배우들의 공산품 같은 연기와, 때깔은 좋을지언정 하나의 영화로써 매끄럽게 묶이지 못하는 각 시퀀스, 관객들의 흥미를 끌만한 소재 선택으로 조립된 한국 상업영화의 하한점을 보여준다. 그 흔한 국뽕영화나 신파영화만큼의 울림도 제공하지 못하는 상업영화에 상업적 가치가 존재할까? 감독의 개성마저 소거된 100억 원 단위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옥자>의 제작비가 한국 제작사에겐 부담이 되어 넷플릭스와 손잡았다는 봉준호의 선택과 투자를 받지 못해 <도끼>의 제작이 무산된 박찬욱의 모습이 허탈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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