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골든 서클>
킹스맨이 돌아왔다. 돌아오지 말지 그랬어…… <킹스맨: 골든 서클>은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해 탄생한 실패작이다. 해리(콜린 퍼스)가 죽고, 에그시(테런 에저튼)이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뒤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킹스맨 양복점에서 일하는 에그시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킹스맨 시험에서 탈락한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프트)의 공격을 받는다. 찰리의 공겨과 함께 킹스맨의 본부와 요원들의 거처가 미사일 공습을 당하고, 새로운 아서(마이클 갬본)와 록시(소피 쿡슨)을비롯한 킹스맨 멤버 전원이 사망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멀린(마크 스트롱)과 에그시는 ‘최후의 날’ 프로토콜을 통해 미국의 사설 정보기관인 스테이트맨의 존재를 알게 된다. 켄터키로 넘어간 그들은 테킬라(채닝 테이텀), 진저에일(할 베리), 샴페인(제프 브리지스), 위스키(페드로 파스칼) 등의 코드네임을 가진 요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포피(줄리언 무어)가 이끄는 거대 마약조직인 골든 서클이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스테이트맨의 도움을 받아 생존했지만 기억을 잃었던 해리는 에그시의 도움으로 기억을 회복한다. 에그시와 해리, 멀린은 포피의 골든 서클에 맞선 전투를 준비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작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쌓은 세계관의 논리는 붕괴된다. 전작은 전세계를 겨냥한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지켜야 할 윤리와 그것을 넘었을 때의 카타르시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재미를 주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번 속편은 전작에서 가장 강력하게 비판받았던 마지막 장면(성 안에 갇힌 공주를 구하는 서사에 공주를 성적 대상화하는 대사와 몰래카메라를 연상시키는 앵글을 넣은 것)을 영화의 테마로 삼으려는 것 같다. 관객들이 전작에서 열광했던 부분(가령 신체의 결손을 인상 깊은 무기로 보강한 가젤의 캐릭터나 깔끔하고 화려한 액션, 계층을 넘으며 드러나는 온갖 서브컬처를 동원한 유머 등)은 퇴보하고, 불쾌함을 유발하는 장면들만이 강화되었다. 가령 이미 SNS상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장면-타깃 여성의 성기에 추적장치를 심는 장면의 설정과 묘사-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CG를 동원해가며 여성의 몸을 훑고 성기 내부에 들어간 추적장치를 굳이 카메라가 따라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해당 장면 직전에 나오는 에그시와 틸디 공주(한나 알스트룀, 전편 마지막 장면에 나온 그 공주가 조신한 영국 가정주부가 되어버렸다)의 통화 장면은 ‘대의를 위해서 참아주는/희생하는 여성상이길 간절히 강구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전편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였던 록시를 퇴장시키는 장면의 태도에서 시작해 메튜 본 감독의 머릿속에서만 주체적인 여성상들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 묘사는 마이클 베이의 대상화된 여성들보다 끔찍하게 다루어진다. 동시에 인종차별적 코드 역시 영화 속에 만연하다. 포피가 동남아의 정글에서 숨어 지낸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시아계 인간은 영화 속에서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으며, 사진으로만 잠시 등장하는 포피의 수하 왕팅펑은 WTF(What The Fuck)을 동양인 이름으로 장난질한 작명이다. 그리고 그 역시 사진으로만 잠시 등장할 뿐 영화 속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메튜 본과 각본가의 머리속에선 여성은 대상화되고 아시아인은 실존하지 않는 놀림거리일 뿐이다.
영화 속 세계관의 논리가 붕괴되는 지점들은 <킹스맨: 골든 서클>을 모든 의미에서 재미없고 비참한 장면으로 만든다. 가이아 이론까지 끌어오며 인종청소를 이야기하던 발렌타인에 비해 자본주의와 인정 욕구에 목매는 포피의 동기는 퇴행적이고 지루하며, 영국 신사의 일상적인 아이템들을 007스러운 무기들로 탈바꿈시킨 재기발랄함은 일상적으로 휴대하지 않는 아이템(야구 방방이나 야구공 등) 들을 미국적이라는 이유로 욱여넣는 (심지어 기능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못한다) 설정들은 관객이 열광했던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낸 뒤 배반한다. 에그시를 연기한 테런 에저튼의 어색한 양복 입은 모습은 워킹클래스의 불량청소년이 하이클래스의 신사로 거듭나는 전작에는 어울렸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첫 등장부터 풍겨오는 어색함이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못한다. 미국 캔터키와 동남아의 정글에서도 바뀌지 않는 의상은 억지로 킹스맨의 정체성을 밀어붙이려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영화의 액션마저 퇴보했다. 교회에서의 롱테이크 난장 액션에 쾌감을 느꼈던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의 액션에서 크나큰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킹스맨 택시에서의 에그시와 찰리의 액션은 호들갑스러우면서도 지루하다. CG를 동원한 카메라 워킹은 불필요하게 과시적이고, 음악의 활용은 뻔하다 못해 지루하며(영화 전체의 음악 사용이 그렇다), 액션의 리듬감 자체가 파괴되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오프닝 시퀀스만의 문제가 아닌 영화 속 모든 액션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엘 마리아치> 등 레퍼런스가 확실한 액션 시퀀스들은 건조하게 다운그레이드 된 동작들을 반복한다. 특히 교회 난장 액션의 재미를 재현하려고 한 마지막 액션 시퀀스는 불필요하게 과시적이며 지루하다.
결국 <킹스맨: 골든 서클>은 나오지 말았어야 할 속편을 억지로 쥐어짜 만들어낸 티가 역력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갈피를 잡지 못해 러닝타임만 길어지게 만들고, 새로운 배우의 발견 대신 기성배우들을 긁어 모아 껍데기만 키운 돈지랄은 아무런 장점으로 남지 못한다(엘튼 존으로 출연한 엘튼 존만이 그나마 돈 값을 한다). 여성혐오와 인종차별을 꾹꾹 눌러 담은 유머들은 당연하게도 전혀 기능하지 못할뿐더러 불편함만 유발하며 영화 관람의 기억을 짜증 나는 기억으로 만들어버린다. 전편의 성공 요소를 완벽하게 퇴보시키고, 전편의 불안 요소를 철저하게 강화시킨 <킹스맨: 골든 서클>은 불필요한 속편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무가치한, 철저히 무가치한 속편이다. 전편의 주요 장면들을 멍청하게 재현하는 몇몇 장면들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