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평범하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진작가와 오랜 세월 가족을 위해 희생한 주부의 로맨스.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하고 짧은 사랑을 느끼지만 다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만큼 여러 영화를 비롯해 소설이나 TV 드라마 등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관람하는 관객은 135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마치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와 로버트(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흘이 끝나지 않는 영원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모두의 기억 속에 남을 걸작이 된 이유는 뭘까? 영화를 보고 있자면 프란체스카가 되어 살아 숨 쉬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와 기존에, 그리고 이 영화 이후에 보여주는 색과 너무나도 다른 결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움 때문일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의 메릴 스트립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은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두 자녀가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들은 문을 살살 닫으라는 프란체스카의 말에도 그가 놀랄 정도로 문을 세게 닫고 프란체스카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각자 자신 앞에 놓인 음식만을 퍼먹는다. 이를 바라보는 프란체스카의 피곤한 눈, 그 퀭한 표정은 프란체스카라는 캐릭터가 살아온 세월을 한 시퀀스 안에 담아낸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미국이라는 땅에 동경을 품고 건너왔지만, 결혼과 육아라는 생활에 묶여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 20년가량을 아이오와의 농장에 갇혀있다시피 살아온 사람이 메릴 스트립의 완벽한 억양과 표정, 제스처로 담겨있다. 필연적으로 로버트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프란체스카가 터트리는 감정, 비가 쏟아지던 날 다시 찾아온 로버트에게 갈지 가족에게 남을지를 고민하던 찰나의 연기는 경이롭다는 표현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가 진행되고 감정이 쌓아 올려질수록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의 연륜이 아니었다면 메릴의 연기를 상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래피에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연출로써나 연기로써나 굉장히 튀는 위치에 서있는 작품이다. 이스트우드가 세르지오 레오네와 돈 시겔의 마초적인 영화에 출연해오며 쌓은 영화적 자양분과, 이를 통해 연출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부터 보여준 연출가로서의 재능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관객들이 목격한 것과는 분명 다른 종류의 연기와 연출이다. 이스트우드의 21세기 작품이나 과거 서부극에서 보여준 마초성은 이 영화에선 (꽤나) 제거되어있다. 프란체스카를 다시 찾아온 로버트가 비를 맞으며 미소 짓는 모습은 그가 선보인 모든 연기를 통틀어 가장 무해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더욱이 로버트를 우러러보는 시선이었던 소설을 온전히 프란체스카의 시선으로 바꾼 각본과 연출은 거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백인 남성의 서사로 채웠던 이스트우드의 행보와 큰 차이를 보여준다. 이스트우드가 이런 영화를 연출하고 연기했다는 것이 어떤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만남으로 성사되고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결혼과 육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시달리며 생활에 갇혀버린 여성, 평범한 생활 속에 은폐된 무관심과 고통에서 프란체스카를 해방시키고 생활을 이어갈 힘이 된 사랑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담아낸다. 메릴 스트립은 프란체스카가 되어 영화 속 아이오와에서 살고 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유려한 카메라는 둘의 사랑을 매끄럽게 포착한다. 메릴 스트립이 주도한 감정은 이스트우드의 카메라의 실려 경이로운 감흥으로 다가온다. 엔드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카메라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주변을 맴돌다 다리 전체가 드러나는 상공에서 멈춘다. 영화가 보여주는 마지막 이미지인 다리에서 멈춘 프리즈 프레임은 사흘 간의 사랑이 영원으로 늘어났음을,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삶이 멈추었음을 증거 한다. 프란체스카의 노트를 읽은 두 자녀의, 영화를 본 관객의 감정 또한 영화와 함께 영원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