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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07. 2017

녹슨 살인 트랩에 기름칠해봤자

7년 만에 돌아온 <직쏘>

 제작비 대비 수익성이 가장 좋은 장르가 호러/스릴러 장르라는 통계가 있었다. 열 편이 넘어가는 시리즈를 양산해내던 80년대 슬레셔 영화들을 비롯해 많은 저예산 호러영화들이 많은 속편과 아류작들을 생산해냈다. 지금은 ‘컨저링 유니버스로’, 또 <분노의 질주: 더 세븐> 같은 블록버스터의 감독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제임스 완이 2004년에 연출한 <쏘우> 역시 이러한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직쏘(토빈 벨)이라는 미지의 인물이 벌이는 살인 트랩의 게임은 점점 게임의 의미를 배제한 채 고어의 강도만을 올려가며 7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3D로 제작된 7편에서 마지막을 선언했던 시리즈가 7년 만에 되돌아왔다. 감독은 <타임 패러독스>를연출해 주목받은 스피어리그 형제가 맡았다. 그동안 직쏘를 연기해온 토빈 벨 또한 복귀했다. 그 결과물은 어땠을까?

 <직쏘>는 <쏘우> 시리즈의 마지막 두 편만큼 처참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름대로 반전을 주기 위해 노력했고, 할로란 형사(칼럼 키스 레니)와 부검의 로건(맷 패스모어)이 10년 만에 돌아온 직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과 직쏘가 벌이는 게임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것도 노력한 티가 난다. 문제는 노력만 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완이 처음 직쏘의 게임을 만들어낸 이후 14년의 시간 동안 게임의 소재인 살인 트랩들은 녹슬어왔다. 게임의 규칙은 헐거워지고 삶/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모아 게임을 벌인다는 것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사실 첫 영화를 제외하면 이러한 의미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잔혹한 고어들을 전시하는 시리즈일 뿐이었다. <직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직쏘>라는 영화가 처한 ‘잔혹한 고어들을 전시하는 시리즈’ 일뿐이라는 상황에 비해 제작진이 스스로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과잉된 자부심을 담아내고, 그러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태도로 영화 내내 일관한다는 점이다. 결국 내세울 것은 잔인한 고어 장면들 밖에 없는 영화가 “우리가 이렇게 쩌는 반전을 준비했어!”라는 태도를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직쏘>에 무슨 대단한 기대를 품고 가진 않았다. 그러나 엽기적인 살인 트랩들로 재미를 보려는 <쏘우> 시리즈의 생명력은 이제 바닥에 가까운 기대치마저 채워주지 못하는 것 같다. 한 인물의 머리가 레이저로 잘려 꽃처럼 벌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기묘한 이야기>의 데모고르곤처럼 혹은 기생수처럼 보여 웃기기만 하다. 그렇게 잘린 머리를 의기양양하게 바라보는 반전의 주인공이라니, 멋진 반전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제작진의 얼굴이 그의 얼굴에 오버랩되면서 두통을 유발하는 엔딩이다. 아직 <쏘우> 시리즈를 단 한편도 극장에서 보지 못했기에 찾아온 호기심에서 극장으로 향했지만 다시는 이 시리즈를 보지 않겠다는 다짐만 하고 나왔다. 녹슨 살인 트랩에 기름칠해봐야 기름때만 더 묻어날 뿐이다. 차라리 직쏘가 붙잡은 사람들이 게임 중에 “어? 이거 녹슬어서 부서지네?”하고 탈출하는 이야기를 쓰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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