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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10. 2017

딱히 공원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일본 영화 <파크>

 일본 도쿄의 이노카시라 공원의 개원 100주년을 맞이하여 영화가 제작되었다. 1960년대의 공원과 2017년의 공원을 오가며 이어지는 사랑과 음악의 이야기. 하시모토 아이, 나가노 메이, 소메타니 쇼타라는 일본의 가장 유명한 젊은 스타들을 캐스팅해 그려내는 이야기. 영화는 캐스팅과 시놉시스,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국내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감성적인 일본 영화의 대열에 낀 수많은 영화 중 한편일 뿐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공원의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이기에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그마저도 잘 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정도 일까? 

 갑자기 준(하시모토 아이)의 집에 찾아온 하루(나가노 메이)는 50년 전 준의 집에서 살던 사치코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다며 공원과 사치코, 사치코의 연인인 신페이의 이야기를 알아내고 싶어 한다. 우여곡절 끝에 사치코의 손자 토키오(소메타니 쇼타)를 만나게 되지만, 사치코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상태이다. 그러던 중 토키오는 사치코의 유품에서 그가 생전에 신페이와 함께 만들던 음악이 담긴 테이프를 발견한다. 준과 하루, 토키오는 아직 미완성인 사치코와 신페이의 노래를 완성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마치 소설처럼 진행된다.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9개의 챕터와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영화 속에서 사치코와 신페이를 찾는 자신과 준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하루의 소설이 고스란히 영화의 형식이 된다.

 이러한 형식은 분명 100주년을 맞이한 이노카시라 공원을 추억하는 좋은 형식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를 다루는 감독의 능력이다. <파크>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 세타 나츠키는 이번 영화에서 포스터만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장면들을 선보인다. 가령 공원의 호수에 떠 있는 배에 누운 준을 잡는 쇼트라던가, 갑자기 준의 방 벽이 갈라지면서 회상이 시작된다던가, 갑작스레 어린 시절 CF를 찍었던 준의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장면 등이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마치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과 같은 나카시마 테츠야 영화 속 소극장 뮤지컬스러운 장면이나, <러브 앤 피스> 또는 <지옥이 뭐가 나빠>와 같은 소노 시온 영화 속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은 굉장히 갑작스럽게, 그리고 불균일하게 영화 속에 흩어져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나카시마 테츠야 또는 소노 시온의 열화 버전처럼 느껴진다. 영화 안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도 못하고, 감독 고유의 개성으로도 작용하지 못하는 이러한 장면들은 이노카시라 공원에도, 준이라는 캐릭터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산만하게 영화 속에 퍼져 있다. 소설이라는 형식은 이러한 장면들 사이에서 틀을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파크>는 “이배우의 팬이 아니면 보지 마세요”의 전형을 따르는 작품이다. 그마저도 “OOO배우의 영상화보” 같은 수식어가 붙기엔 애매해 보인다. <파크>가 이노카시라 공원이 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잘 풀어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사람들이 <파크>를 보고 공원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영화는 분명 공원의 아름다운 몇몇 풍광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이 이노카시라 공원만의 특색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해 보이고, (결국 사용되지도 않을) 공원의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장면은 공원의 이모저모를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집어넣었다는 인상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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