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20. 2017

전자레인지 돌려 깨우는 3분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

 “한 2~30년 전쯤 과거로 돌아가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나오는 영화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나오는 영화보다 훨씬 성공했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모 트친분이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남긴 말이다. 1966년 처음으로 배트맨이, 1979년 슈퍼맨이 영화화될 때만 해도, 아니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이 각각의 배트맨 영화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만 해도 <저스티스 리그>라는 빅 이벤트가 이렇게 처참한 기록을 남길 줄 누가 알았을까? 엄청난 물량공세와 흥행으로 다른 프랜차이즈들을 압도하는 MCU와 <로건>, <데드풀> 등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엑스맨 유니버스와 비교하면, 후발주자인 DCEU의 모습은 아쉽기만 했다. 앞선 세 영화의 (흥행은 성공했지만) 실패 끝에 등장한 <원더우먼>의 성공 이후, 팬들은 다시금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드디어 실현된,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과 조지 밀러 등의 이름들이 오간 빅 이벤트인 <저스티스 리그>는 다시 살아난 희망마저 앗아간다.

 “<저스티스 리그>가 그렇게까지 재미없는 영화인가?”라고 물어보면 러닝타임 120분 정도는 금방 지나간다고 답할 수 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처럼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루하지는 않다. 플래시(에즈라 밀러)나 사이보그(레이 피셔)처럼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나름 괜찮게 선보이고, 슈퍼맨(헨리 카빌)의 예견된 부활까지 영화가 담아내야 될 이야기는 모두 담아낸다. 문제는 영화의 속도와 톤이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맞혀진 것 같다는 인상이다. 이러한 지적은 MCU에서부터 이야기가 나왔다. MCU는 ‘어벤저스’라는 이벤트를 향해 개별 영화들이 드라마의 각 에피소드처럼 진행된다. 각각의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진행되지만, 모두가 모이는 이벤트를 위해 떡밥을 뿌리는 소모적인 행태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MCU의 작품들은 캐릭터 쇼라는 기본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개별 작품의 매력을 유지한다. <저스티스 리그>는 온전히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저스티스 리그>에서는 배트맨(벤 애플렉)이 원더우먼(갤 가돗),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 등의 메타휴먼들을 모아 저스티스 리그를 결성하고, 스테판 울프(시아란 힌즈)를 격퇴하는 메인 플롯과 동시에 플래시, 사이보그, 아쿠아맨, 슈퍼맨 등 각각의 이야기가 서브플롯으로 함께 제시된다. 12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다 욱여넣을 수없는 플롯들은 스쳐 지나가는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처럼 완전히 분절된 각각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MCU가 페이즈 단위로 진행되는 거대한 드라마이면서 개별 작품의 속성을 유지한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그냥 큰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 수준에 머문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잭 스나이더가 하차하고 조스 웨던이 빈자리를 채웠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절대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대 슈퍼맨>은 DCEU가 나아갈 (비주얼적인) 지향점을 확실히 잡아두었다. 때문에 DCEU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지향점을 살릴 각본과 허튼 방향으로 엇나가지 않도록 제작진을 붙잡아 줄 기획자이다. <저스티스 리그>를 보면 여전히 잭 스나이더의 장점들이 살아있다.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등장하는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의 몽타주라던가 원더우먼이 박물관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는 장면 등은 시퀀스 단위로는 괜찮은 비주얼을 선보이는 잭 스나이더의 장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조스 웨던이 투입되어 재촬영된 장면들은 영화를 보면서 잭 스나이더와 조스 웨던이 촬영한 장면들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톤이 일정하지 않다. 특히 슈퍼맨이 부활한 뒤 멤버들과 첫 대면하는 장면의 톤은 조스 웨던이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긴 했을까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잭 스나이더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고편 속 많은 푸티지들이 본편에서 잘려나간 것 또한 이러한 어색함에 크게 한몫한다. 결국 <저스티스 리그>는 조스 웨던이 <어벤저스>에서 보여준 유기성은커녕,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보여준 정리될 수 없는 플롯과 시퀀스들의 난장만을 이어간다. 

 <저스티스 리그>는 한 편의 영화로 보면 형편없이 짝이 없지만, DCEU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일부로 본다면 DC 팬들에게는 수많은 떡밥들을 남겨준다. 잠깐 등장하는 메라(엠버 허드)와 아틀란티스의 모습이라던가, 수감된 플래시의 아버지 헨리 앨런(빌리 크루덥), 전지전능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슈퍼맨의 모습, 잠시 등장하는 그린랜턴 군단 등은 팬들이 바라던 몇몇 모습이다. 쿠키영상 두 개의 내용 역시 그러한 부분에서 팬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동시에 현재 CW 채널에서 방영 중인 DC 드라마들과 DCEU의 작품들을 비교하게 되기도 한다. 가령 플래시의 능력 묘사는 분명 이번 영화보다 드라마 속의 묘사를 더욱 선호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혹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속 퀵실버와 비교하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할 것이다. 종종 등장하는 ‘백인 시스젠더 남성 너드’식 조크는 벤 애플렉이나 제이슨 모모아라는 영화 밖의 배우 개인이 야기한 논란과 맞물려 재미없고 짜증만 유발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저스티스 리그>는 각 캐릭터를 소개하고 슈퍼맨을 부활시키기 위한 하나의 에피소드 수준에 머문다.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의 함선에서 플래시가 일으키는 전기와 마더박스를 통해 슈퍼맨을 부활시키는 장면은 뭐랄까,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3분 요리를 연상시킨다. 어쨌거나 잘 때려 부시는 액션들과 (배우의 매력인지 캐릭터의 매력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들을 보는 것은 맛있지만, 썩잘 어울리지도 않는 편의점 음식들을 잔뜩 사다가 돌려 먹는 기분이다. 다른 잘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상품들을 봤을 때의 포만감보다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 같은, 맛은 있지만 어색한 인스턴트로 배를 채웠다는 생각만 든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트리니티가 등장하는 영화가, 슈퍼맨과 플래시의 속도 대결이 등장하는 영화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듣보잡 히어로들이 모인 영화보다 지루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딱히 공원을 찾고 싶지는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