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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24. 2017

폭력적인 프레임의 지겨운 루프

<해피 데스데이>

*스포일러 포함


 어느덧 공포영화의 명가로 자리 잡은 제작사 블룸하우스의 신작이다. 대학생인 트리(제시카 로테)는 생일을 맞았다. 전날 잔뜩 취해 초면인 카터(이스라엘 브로우사드)의 방에서 자고 일어난 트리는 여느 때처럼 피곤한 하루를 보낸다. 그날 저녁, 파티 장소를 찾아가던 트리는 학교 마스코트인 아기의 가면을 쓴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살해당하는 순간 트리는 다시 카터의 방에서 깨어난다. 범인에게 살해당할 때마다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게 된 트리는 끔찍한 루프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해피 데스데이>는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사랑의 블랙홀>이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같은 타임루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자신의 생일에 갇혀버린 트리는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아 루프를 빠져나오려 한다. 타임루프를 빠져나와야 한다는 설정과 슬래셔 장르의 결함은 언뜻 신선해 보인다.

 영화는 공포와 코미디의 결합을 시도한다. 학교 마스코트의 가면을 쓴 살인마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점프 스케이프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드러나는 코미디가 뒤섞여있다. 이러한 혼종은 나름 성공적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고 웃게 만든다. 다만 이러한 공포와 코미디의 근원이 여성이라는 트리의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나는 쉽게 웃을 수 없었다. 트리는 자유롭게 술과 섹스를 즐기는 사람이고, 그가 속한 클럽은 할리우드 청춘 코미디에서 으레 등장하는 ‘다이어트와 남자에 집착하는 여성들의 모임’으로만 표현된다. 이러한 트리를 공격하는 것은 아기의 가면을 쓴 살인마이다. 아기의 형상을 띈 살인마는 영화 내에서 수 차례 ‘헤프다’고 지칭되는 트리를 끊임없이 살해한다. 반복되는 루프 속에서 트리가 얻게 되는 것은 정상가족으로의 재편입(아버지와의 화해)과 한 명의 고정된 애인이라는 결론이다. 정리하자면 <해피 데스데이>는 방황하는 젊은 여성이게 살해의 루프라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하며 소위 정상성이라 불리는 범주 안으로 인물이 향하도록 밀어붙이는 서사를 보여준다. 물론 트리는 방황하고 있고, 어머니의 죽음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다. 몇몇의 대사와 스마트폰 속 화면으로 제시되는 트리의 전사는 그가 얻은 상처들을 전시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트리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고 철없는 젊은 여대생으로 그를 범주화 한 뒤에 그의 헤픈 행실에 폭력적인 벌을 내린다. 트리는 정상성을 회복하고 나서야 살해의 루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하필이면 아기의 얼굴을 한 살인마의 형상에서 <스크림>의 마스크와 같은 랜덤한 공포의 선택이 아닌 젊고 헤픈 여성을 단죄하겠다는 연출자/각본가의 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여기에 영화는 처음 제시된 뉴스 속 연쇄살인마가 아닌 다른 인물을 범인으로 제시한다. 나름의 비틀기라고 제시한 설정이지만, 그 동기는 이러한 이야기를 왜 아직도 써먹을까 싶은 전형적인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서사를 따라간다. 트리를 살해하려던 인물은 트리의 룸메이트인 로리(루비 모딘)이다. 로리는 자신의 비밀 애인인 그레고리 교수(찰스 에이트켄)가 트리와 만남을 가지고 있고, 그레고리가 로리 자신보다 트리에게 더욱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살해 계획을 세웠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여적여 프레임 속에서 인물의 동기가 발생하고, 영화는 “여자들끼리 싸우는 게 당연하지” 혹은 “여자들끼리 싸우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태도로 엔딩을 맞이한다. 때문에 타임루프 안에 갇힌 트리는 마치 모든 사건을 홀로 해결하고 앞으로 전진해가는 여성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결과적으로 여성혐오적이며 여적여 프레임을 동원한 영화의 규칙 속을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된다. 심지어 영화는 트리가 갇힌 타임루프의 원인을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결국 영화가 제시하는 규칙은 지겨운 여적여 프레임 속에서 누군가는 내쳐지고 누군가는 정상 범주 속으로 유도되는, 지겨운 루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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