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브레너 <오리엔트 특급 살인>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레너)는 사건 의뢰를 받고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탑승한다. 런던까지 향하는 여정 동안 책이나 읽으며 휴식을 취하려던 찰나, 열차 탑승객 중 한 명이었던 라쳇(조니 뎁)이 칼에 찔려 살해당한다. 함께 열차에 타고 있던 열두 명의 승객, 라쳇의 비서인 맥퀸(조시 게드), 나이 든 공작부인 드라고미로프(주디 덴치)와 그의 하녀 슈미트(올리비아 콜맨), 가정교사 메리(데이지 리들리), 의사 아버스넛(레슬리오덤 주니어), 하드만 교수(윌렘 대포), 나이 든 집사 마스터맨(데릭 제이코비), 계속해서 기도하는 필라(페넬로페 크루즈), 하드먼 부인(미셸 파이퍼), 안드레니 백작(세르게이 폴루닌)과 그의 부인(루시 보인턴), 그리고 승무원인 미셸(치코 켄자리)이 용의 선상에 오른다. 포와로는 짧았던 휴식을 접고 정의를 찾기 위해 추리에 나선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당연하게도 거대한 원작의 아우라를 감당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지금에야 원작을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은 세대이지만, 원작의 트릭이 워낙 유명하기에 나처럼 이미 영화의 결말을 알고 극장을 찾은 관객도 많을 것이다. 때문에 케네스 브레너의 포와로는 [명탐정 코난]이나 BBC 드라마 <셜록>과 같은 추리쇼 대신 드라마에 방점을 찍는다.
이러한 방식이 성공일까 실패일까? 나는 아직 원작은 물론 정공법으로 만들어진 시드니 루멧의 1974년작도 아직 보지 못했으므로 딱히 비교대상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케네스 브레너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절반의 성공으로만 느껴진다. 영화가 성공한 부분은 외모나 성격에서 드러나는 포와로의 캐릭터성과 사건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클라이맥스다. 영화는 포와로의 첫 등장부터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대칭에 집착하는 포와로의 성격을 보여준다. 계란 두 개의 사이즈가 정확해야 한다면서 수 차례 주문을 번복하는 모습이나, 오른발로 똥을 밟자 대칭을 위해 왼발로도 똥을 밟는 모습 등에서 이러한 강박이 드러난다. 예루살렘에서 사건을 해결하며 “대칭이 맞지 않는 부분을 찾는 게 자신의 추리 방법”이라 말하는 포와로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그의 콧수염은 케네스 브레너가 이번 영화에서 포와로라는 캐릭터 자체를 얼마나 공들여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가 정의에 대해 말하는 부분, 사건에 감정적으로 접근하여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방식은 부분적인 성공으로 보인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결말 자체가 감정을 크게 뒤흔드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기에 한술 더 떠 영화 내내 등장하는 흑백의 플래시백들로 인물들의 감정선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포와로의 추리쇼와 함께 각 인물들의 과거사가 펼쳐지고, 미셸 파이퍼를 비롯한 호화 캐스팅진의 연기를 통해 관객의 감정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연출은 꽤나 효과적이다. 평단에 혹평에 비해 선전하고 있는 영화의 흥행세를 보면 이러한 연출이 관객을 사로잡는데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의 재미있는 추리물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포와로의 추리쇼가 일종의 신파극이 되어버렸다는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포와로가 열두 명의 용의자를 모아 놓고 벌이는 하이라이트는 회색의 뇌세포를 지닌 명탐정의 추리쇼라기 보단 각 인물이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는 신파극처럼 느껴진다.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음악도 추리극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라기 보단 신파극스러운 감정선을 강조하는 잔잔한 음악만이 이어진다. 이러한 음악과 클라이맥스는 관객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때문에 포와로의 추리 과정이 매끄럽지 않기도 하다. 오리엔트 특급에서의 사건을 과거의 사건과 연결시키는 부분은 갑작스럽고, 사건의 힌트가 되는 단서들은 언급만 될 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명탐정 포와로가 등장했고, 추리극이라는 기본적인 뼈대를 유지하기 위한 소재 정도로만 활용되고 추리극을 기대했을 포와로의 팬들의 욕구는 전혀 충족시키지 못한다. 결국 케네스 브레너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포와로는 영화가 끝나고 그의 추리는 기억나지 않는, 영상화된 포와로 중 가장 화려한 수염만이 기억나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영화의 흥행으로 <나일강의 죽음> 또한 케네스 브레너가 연출 및 주연을 맡아 제작될 예정이라지만, 킬링타임 그 이상을 기대하기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