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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Dec 12. 2017

낡은 현재의 이야기

양우석 감독 <강철비>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한반도와 그 인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변호인>으로 천만의 맛을 봤던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는 이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2011년 양우석 감독은 북한의 쿠데타와 핵전쟁 위기를 담은 웹툰 『스틸레인』의 스토리를 쓴 경험이 있다. <강철비>와 『스틸레인』의 주인공과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스틸레인』을쓸 때 쌓은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강철비>가 완성될 수 있었다. 영화의 배경은 지금의 한국, 이제 막 남한의 대선이 끝난 시점이다. 북한의 은퇴한 군인 엄철우(정우성)는 군부의 리태한(김갑수)에게서곧 쿠데타가 벌어질 것이라며 그의 원인이 되는 인물들을 암살할 것을 명령받는다. 엄철우는 명령을 받고 개성으로 향하지만, 개성에 도착한 것은 북한의 1호. 거기에 쿠데타가 발생하여 개성은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되고, 엄철우는 얼떨결에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다. 엄철우가북한 1호를 치료하기 위해 찾은 병원이 우연히도 청와대 외교수석인 곽철우(곽도원)의 전 부인이 운영하던 곳이었고, 남한 측에서 북한 1호를 보호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쿠데타가 벌어진 북한은 남한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이참에 핵으로 전쟁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대통령 이의성(김의성)과 통일을 생각하면 핵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의견인 당선인 김경영(이경영)이 대립한다.

 <강철비>는 딱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담아낸 영화이다. 기존의 영화들이 남한과 북한에 인물, 여기에 미국 혹은 중국의 인물들을 짧게 끼워 넣었다면, <강철비>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입장까지 담아낸다. 청와대 외교수석인 곽철우가 CIA나 중국 외교부 등과 정보를 교환하며 정세를 파악하고, 한반도 위에서 핵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 또한 꼼꼼하고 납득 가능하게 묘사된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벌어지고, 북한 1호가 의식불명 상태로 남한에 내려오게 된다는 과감한 상황을 기대보다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는 것이 <강철비>와『스틸레인』, 양우석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때문에 <강철비>를 보는 것은 언뜻 어떤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한반도 정세와 역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음모론을 실제 역사와도 같은 꼼꼼함으로 풀어낸 김진명 작가의 소설과 같다. 북핵 문제를 직접적인 소재로 삼은『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나비야 청산가자』, 제목 그대로 사드 문제를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THAD』와 같은 소설과 영화 <강철비>는 상당히 유사한 결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김진명의 소설처럼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등이 북한 1호의 상태와 쿠데타, 북핵 등의 정보를 두고 벌이는 논쟁들과 대선이라는 이벤트와 맞물리는 남한의 핵무장에 관한 의견 차이, 분단과 핵전쟁위기 사이에서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까지 나름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기에 <변호인>에서 드러났던 양우석 감독 특유의 휴머니즘, 블록버스터 다운 액션(엄철우와 북한 암살요원 최명록(조우진)의 몇몇 액션은 <존 윅> 같은 근접 총기 액션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퀄리티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으로 양념을 한 작품이 바로 <강철비>이다.

 때문에 <강철비>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낡고 익숙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강철비>는 분명 한국전쟁부터 현재 시점의 이르는 남북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 중에서도 가장 세세하고 현실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렇기에, 전쟁 불감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의 관객들에겐 또 하나의 익숙하고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제작의 시기상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이기도 하지만, 탄핵정국(영화가 겨울의 대선에서 시작하는 것은 분명 올해 12월 이었었어야 할 대선을 노린 것이다)과 트럼프의 미국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현재의 사드 문제까지 이어지는, 북핵을 놓고 오랜 기간 이어지는 대립의 역사는 다소 지겹게 느껴진다. 여기에 휴머니즘을 녹여내기 위해 집어넣은 몇몇 장면들, 가령 함께 수갑을 차고 국수를 먹는 두 철우라던가아재개그를 치는 장면, 지드래곤의 노래를 기어이 두 번이나 삽입하는 것 등의 장면들은 140분의 긴 러닝타임을 더욱 늘어지게 만든다. 또한 전반부 북한의 쿠데타 과정에서 등장하는 교차편집이 큰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도 아쉽다. <변호인>의 법정 장면이 송강호라는 괴력의 배우의 능력에 힘입어 긴장감과 감동을 자아냈다면, <강철비>의 장면들은 그 정도의 괴력을 지닌 배우가 없고 편집만으로 이를 만들어내기엔 아직 감독의 역량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쿠데타와 핵전쟁, 남한으로 피신한 북한 1호 등의 상상은 모두의 상상임과 동시에 지겨워진 상상이다.

 <강철비>는 남한의 핵무장이라는 이슈에 대해 놀랍도록 중립을 유지한다. 대통령과 당선인 두 캐릭터는 각각 핵무장 찬성과 반대로, 전시상황에서의 핵공격 찬성과 반대로 갈라서서 대립한다. “분단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보다 분단을 이용하는 것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곽철우의 대사처럼, <강철비>는 전쟁과 핵을 정치와 이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이다. 영화는 140분 러닝타임 내내 그 중립을 유지하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가선 결국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쩌면 한국 상업영화의 고질병과도 같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지만 들어가는 에필로그’를 넣기 위한 선택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결과적으로 두 개의 입장중 어느 한쪽으로 수렴하는 결말을 맞게 된 엔딩을 통해 영화와 양우석 감독은 한쪽에 입장에 가까이 서게 된다. 때문에 <강철비> 또한 분단의 상황 사이에서 태어난, 155억 원의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낸 상품으로만 느껴진다. 상업영화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정도의, 딱 그 정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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