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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4. 2018

영혼-육체/꿈-현실이라는 세계

*스포일러 포함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일디코 엔예디의 18년 만의 컴백작이다. 장르적으로는 판타지와 로맨틱 코미디를 오가는 것 같기도 하고, <옥자>의 도살장 장면보다 더욱 적나라하게 실제 도살장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며, 오프닝 시퀀스부터 등장하는 눈 덮인 숲 속의 사슴들은 등장할 때마다 자연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영화의 단편적인 부분만 늘어놓고 본다면 종잡을 수 없는 작품이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서사와 주제는 명확하다. 안드레(게자 모르산이)는도살장의 재무이사다. 그는 도살장에 새로 온 품질관리사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를 보고 묘한 감정을 느낀다. 어느 날, 도살장에서 교미 약품 도난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찾기 위해 전 직원이 연례 정신위생검사를 앞당겨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안드레와 마리어는 서로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꿈속에서 둘은 사슴이 되어 눈 덮인 숲 속을 거닌다. 둘은 서로가 꿈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묘한 끌림을 느낀다.

 안드레는 왼팔이 불구다. 전혀 움직이지 않아 오른팔로 붙잡고 있거나 축 늘어진 상태로 내버려둔다. 신체적으로 결핍이 있는 안드레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대부분 톤 다운되어 있다. 혼자 살기에 제대로 집안 청소도 하지 않는 그의 집은 항상 어두컴컴하고, 축 늘어진 그의 왼팔처럼 소파 위에서 TV를 보다 늘어져 잠드는 게 그의 일상이다. 왼팔 때문에 왼쪽으로 조금 기운듯한 그의 몸은 카메라의 잡히는 모습 자체로 그의 결핍을 설명한다. 미리어는 기억력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좋다. 자신이 수두에 걸렸다 완치된 날짜를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드레가 그녀에게 내뱉은 17번째 문장을 정확하게 읊어주기도 한다. 놀라운 기억력 때문일까, 망각의 동물이 망각을 하지 못하면 고장 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마리어는 정신적 결핍을 겪는다. 여전히 아동 전문 심리상담사에게 찾아가며, 자신이 정한 선과 규칙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식탁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를 치우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은 마리어가 결벽증이 있다고 보여주는 것만 같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마리어를 어떤 선 안에 두려 한다. 그림자, 계단 손잡이, 거울, 기둥 등의 선들은 영화의 프레임을 더욱 잘게 쪼개 그 안에 마리어를 위치시킨다. 타인과 대화도, 신체적 접촉도 수월하지 않은 그는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밖에 없던 선 안에 갇혀있다.

 안드레와 마리어는 꿈속에서 사슴이 되어 만난다. 그들이 만나는 눈 덮인 숲은 각자가 가진 결핍을 넘는 환상의 공간이다. 둘은 자연스럽게 몸을 비비고, 먹을 풀을 찾고, 시냇물을 마신다. 수직으로 곧게 뻗은 나무들로 가득한 공간이지만,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 선들을 지나친다. 아니, 나무라는 선들은 스크린 내부에 존재하는 두 사슴과 분리되어 스크린의 외피에 누군가 그어버린 선처럼 붕 떠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들은 나무들을 자연스럽게 지나치기도, 그사이를 맹렬하게 돌파하기도 한다. 결국 꿈이라는 공간에서 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교감한다. 안드레는 마리어를 자신의 단골 식당으로 데려가지만 변해버린 식당 때문에 실패한 데이트가 되고, 마리어는 음악을 들으며 감정을 익히려 하고 안드레와의 연락을 위해 핸드폰도 사보지만 그의 한 마디에 무너져 내린다. 꿈이 아닌 현실의 공간에서 그들은 계속 다양한 결핍을 마주하고 한 순간 좌절한다. 안드레와의 관계가 실패했다고 느낀 마리어는 (아마도) 생애 처음으로 시도한 감정적 관계의 실패 앞에 자신의 왼팔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다. 담배도, 유흥도, 여자관계도 끊었다는 안드레는 다시 전 애인(아내?)과 섹스를 한다. 얼핏 보면 각각의 정신적, 신체적 결핍이 뒤바뀌어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그들은 결국 만나 섹스를 하고, 더 이상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꿈-환상의 공간에서 겪는 영혼의 교감이 필요했던 그들은 육체를 지닌 현실에서 감정을 나눈다. 때문에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영혼과 육체에 어떤 위계를 부여하는 대신, 현실-꿈이라는 각각의 세계에서 각각의 역할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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