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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05. 2018

빼어난 연기로 그려낸 덩케르크 전초전

<다키스트 아워> 조 라이트 2017

 조 라이트 감독에게 다이나모 작전, 즉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이미 전작 중 한편인 <어톤먼트>의 유명한 롱테이크 시퀀스로 1940년의 덩케르크를 스크린에 담은 전력이 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가 공개된 지 채 반년이 지나기도 전에, 다이나모 작전이 실행되기까지 처칠의 행보를 담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어톤먼트>와 <덩케르크> 두 영화 사이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전쟁영화(물론 <어톤먼트>를 전쟁영화 장르라고 할 순 없지만)처럼 전장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도 않고, 당연히 으레 등장하는 액션 시퀀스도 없다. 대신 영화는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만)이 총리가 되고 다이나모 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신임을 얻는 몇 주 간의 시간을 담아낸다. 때문에 <다키스트 아워>는장르적으로는 정치극에 가까우며, 형식적으로는 의회, 집, 회의실 등을 배경으로 한 실내극이다.

 영화가, 그리고 게리 올드만이 공들여 묘사하는 것은 윈스턴 처칠이라는 개인의 성질이다. 그의 주변 인물들, 가령 비서인 레이톤(릴리 제임스), 같은 보수당의 핼리팩스 자작(스티븐 달레인), 심지어 국왕인 조지 6세(벤 멘델슨)까지 그를 무서워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처칠을 만난 사람들의 대사와 반응을 통해 영화 내내 강조된다. 게다가 영화 내내 강조되는 것은 그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종잡을 수 없는 언행, 주절거리는 듯한 말투이다. 갈리폴리 해전에서 대패하고, 국민과 정당, 국왕의 신임마저 잃어버린 그는 전시에 총리가 된다. 처칠 자신도 이러한 반응들을 인지하고 있고 이미 익숙하기까지 한 상태이다. 그는 전시에 꾸려진 내각에 고의적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선출한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를 한계에 몰아두고 그 혼란 속에서 답을 찾아내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그의 비서인 레이톤은 처칠에게 “당신은 확신이 없기에 현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다키스트 아워>의 카메라는 계속해서 처칠을 프레임 속에 가둔다. 창문, 문, 화장실 등 직사각의 프레임들 속에 갇힌 처칠은 어둠 속에 홀로 존재하는 것만 같다. 정말로 그렇다. 그를 위해 희생한 아내 클레멘타인(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을 비롯한 가족들은 그가 총리가 된 것을 축하해주지만, 축하의 대상은 처칠보단 긴 세월을 버틴 자신들을 위해 잔들 든다. 적으로 가득한 전시 국회의 사람들 등 그의 주변 인물들은 그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전시라는 상황 속에서도 총리라는 권력을 쥐기 위해 정치공작을 이어간다. 때문에 처칠은 두꺼운 시가를 피고, 낮에도 술을 마시며 홀로 고민한다. 게리 올드만의 연기에 담긴 괴팍한 성격의 처칠은 나치와의 평화협상과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전쟁 속에서 계속 고민한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웨스트민스터로 향하는 차에서 내려 지하철에 탄다. 지하철의 국민들은 처칠을 보고 두려움을 갖지만, 일일이 승객들의 이름을 물어보고 현 시국에 대한 의견을 묻는 처칠을 보며 어떤 자신감을 가진 표정을 띤다. 처칠은 그들에게 힘을 얻어 예정된 연설에서 달변을 토해내고, 정적을 포함한 모든 인물에게 지지를 얻어내어 다이나모 작전을 실행한다. <다키스트 아워>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영화는 그렇게 소위 ‘국뽕’이라 불리는 모양새로 마무리된다. 어찌 보면 <덩케르크>의 볼튼 사령관이 내뱉는 ‘Home’이라는 대사와 일맥상통하는 엔딩으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다키스트 아워>의 마지막 장면은 덩케르크로 향하는 차출된 민간 선박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덩케르크>는스스로의 형식 안에서 영화적 성취를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Home”이라는 대사엔 단순한 국뽕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층위가 존재했다. 그러나 <다키스트 아워>의 지하철 장면과 이어지는 처칠의 연설 장면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끓어오르는 대단히 선동적인 장면이다. 연설을 마치고 의회를 떠나는 처칠의 모습을 아름답게 잡아낸 장면은 ‘국민의 힘’, ‘국민의 열망’과 같은 층위 밖에 지니지 못한다. 때문에 125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쌓인 처칠의 서사는 영국 국민들의 염원 등으로 치환되어버리고 그 이상의 무게감이나 인물/사건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지 못한다. 게리 올드만의 놀라운 연기가 돋보이지만,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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