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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5. 2018

당신은 왜 90년대에 멈춰있나요

<맨헌트> 오우삼 2017

 <영웅본색> 트릴로지, <첩혈쌍웅>등의 영화로 80년대 말~90년대 홍콩 반환 이전까지의 홍콩 누아르 영화를 책임지던 오우삼 감독의 새 영화가 나왔다. 중일 합작으로 제작된 <맨헌트>는 중국의 자본과 오우삼, 장한위 등의 중국 배우와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쿠니무라 준 등의 일본 배우, 이시자카 타쿠로 촬영감독 등의 일본 스탭, 그리고 하지원 등이 참여한 작품이다. 영화는 오사카를 배경으로 사카이 회장(쿠니무라 준)이 이끄는 텐진 제약회사의 음모에 변호사 두 추(장한위), 경찰 야무라(후쿠야마 마사하루), 킬러 레인(하지원) 등이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아낸다. 영화는 암살 임무를 받고 술집 주인으로 위장한 레인이 우연히 그 술집을 찾은 두 추와 나누는 대화로 시작한다. 둘은 요즘 사람들은 옛날 영화를 보지 않고, 그 시절의 영화를 무시한다는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마지막 야무라의 대사 중 “A BetterTomorrow”(<영웅본색>의 영어 제목)이 등장한다. 오우삼은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노골적으로 과거를 추억한다. 오사카를 배경으로 한중일의 배우들을 모아 과거 홍콩 누아르적인 영화를 다시 한번 만들어 보려는 야심이었을까?

 영화는 첫 장면부터 노골적으로 과거의 영화들 재현한다. 오우삼 본인 혹은 왕가위 등 80년대 말~90년대를 주름잡던 감독들이 즐겨 사용하던 기법들이 대거 등장한다. 가령 잔상처럼 지연되는 프레임, 영화 전체에 파편처럼 퍼져 있는 플래시백 몽타주, 프리즈 프레임 등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법들은 오사카 관광홍보영상 마냥 쨍한 디지털카메라의 영상과는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5~7개의 쇼트로 이루어진 영화의 첫 몽타주 시퀀스에서 모든 숏을 프리즈로 마무리 짓는 방식 같은 것은 정신 사나울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등장하는 대부분의 플래시백과 각종 애틋한 (그러니까 <영웅본색>이나 <첩혈가두> 식의 우정 혹은 사랑 묘사가 드러나는) 장면에서 같은 기법이 반복된다. 영화를 다루는 기법 자체는 오우삼의 전성기와 다름이 없지만, 영화의 쇼트 개수는 현재의 액션 영화들과 유사하기에 발생하는 문제점이다.

 오우삼이 주력으로 삼는 액션 또한 아쉽다. 액션의 합은 <이퀼리브리엄>이나 <존 윅> 같은 영화의 건-푸 혹은 건-발레 같은 액션을 연상시키지만, 그 퀄리티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사실 일개 변호사인 두 추의 무술 실력이 뛰어나다던가 하는 설정은 눈 감아줄 수 있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액션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지점이다. 홍콩에서 액션으로 장사를 하던 사람인지라 타격의 순간을 담거나, 타격으로 인해 상대방이 격퇴되는 순간을 담는 부분들은 현재 할리우드 영화의 가벼운 액션보다는 낫다. 그러나 중간 이동 과정 없이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 액션을 이어가는 편집(고다르냐?), 오사카 관광홍보영상인 것 마냥 정신 사나운 카메라 무빙, 순간순간 어색하기 짝이 없는 CG 등은 영화를 감독과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즐길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이른바 비웃음의 킬링타임이랄까. 이것의 절정을 찍는 장면은 오우삼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심지어 <맨헌트>의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흰 비둘기가 등장하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 야무라와 두 추가 벌이는 액션에서 흰 비둘기들이 등장하는데, 등장하는 방식이 괴상하기 짝이 없다. 장면을 묘사하자면, 야무라가 두 추를 제압하고 바닥에 쓰려진 두추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비둘기가 총구와 두 추 사이로 지나가 시야를 가리고 그 사이에 두 추가 총을 빼앗아 반격을 가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두 추의 반격을 맞고 쓰러지는 야무라는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바닥에 쓰러진 그의 얼굴 옆에는 (아마 그대로 넘어졌다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위협적인 돌부리가 있다. 정말 헛웃음이 절로 쏟아진다.

 <맨헌트>는 여러모로 괴작이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뒤섞여 나오는 언어의 향연과 장비만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기법은 90년대에 머물러 있는 영상, 온통 후시녹음으로 진행되어 웅웅 울리는(이건 믹싱의 문제인지 상영관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대사, 구시대적 감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음악, 흰 비둘기로 대표되는 괴랄한 액션까지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노 시온의 괴작(<도쿄 흡혈 호텔>)을 볼지 오우삼의 괴작을 잠시나마 고민했던 순간이 헛된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 궁금증에 한파를 뚫고 굳이 극장을 찾아가야 했을까? 여러모로 후회로 가득한 극장 나들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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