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 유아사 마사아키 2017
사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를 관람하러 극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걱정이 됐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먼저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은 영화를 극찬했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유아사 마사아키의 최근작 <데빌맨 크라이 베이비>는그의 스타일 정도만을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던 범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장면에 따라 변화하는 작화 스타일, 신체비율을 어그러뜨리는 과장된 원근감의 표현, 혹자는 추상적이라고 말할 정도의 일렁이는 곡선들은 <데빌맨 크라이 베이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유아사 마사아키의 개성이자 장단점이었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그의 개성이 장점으로 극대화된 결과물과도 같았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는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지브리의 영화들이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의 세계관은 <모노노케 히메>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같은 지브리식 환경주의를 연상시키고, 악역에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은 어른 캐릭터들을 단순한 악역으로 몰아붙이는 대신 개별적인 서사와 캐릭터성을 부여함으로써 전체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영화 속 어른들의 행동으로 인해 마을에 재앙이 발생한다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지브리 영화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에서는 의외로 뮤지컬스러운 장면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겨울왕국>이나 <라푼젤> 류의 최근 디즈니 영화 혹은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보단 <환타지아>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디즈니의 초기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앞서 언급한 ‘신체비율을 어그러뜨리는 과장된 원근감의 표현’으로 인물들의 춤을 표현하는 방식은 <환타지아>의 빗자루들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카드병정들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이러한 리듬감은 <벨빌의 세 쌍둥이>와 같은 살뱅 쇼메 영화의 리듬감을 고스란히 이식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서구권의 뮤지컬-애니메이션 영화들과는 다른 종류의 음악, 가령 아이돌 팝~팝 록 정도로 구분될 수 있는 음악들이 시작되는 순간은 <너의 이름은>을 비롯한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향을 얕게나마 느껴볼 수 있는 지점이다.
결과적으로 <새벽을 알리는 루의 이름은>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의 장점만을 가져와 유아사 마사아키의 개성으로 통합시킨 모양새가 되었다. 때문에 인어 루(타니 카논)와 도쿄에서 이사 온 소년 카이(시모다 쇼타)가 우정을 나눈다는 익숙한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손쉽게 파고들어온다. 카이의 할아버지나 타코 할멈의 플래시백이 등장하는 지점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들 외에도 카이의 친구인 유호(코토부키 미나코)와 쿠니코(사이토 소마), 유호의 할아버지인 마을 대표, 한 때 카이처럼 음악을 했던 아버지 등 많은 인물들이 영화 속에서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112분의 러닝타임 속에 빼곡히 집어넣은 여러 캐릭터의 세부 서사들을 보고 있자면 영화가 지닌 서사적 섬세함에 놀라게 된다. 동시에 그것이 통합된 전체의 서사로 엮이는 후반부의 감동은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의 경험이 2018년 중 최고의 애니메이션일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루의 노래에 맞춰 자신도 모르게 춤을 추는 하나시 마을 사람들처럼 영화에 빠져들게 된다.
p.s. 영화를 보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이라면 루를 비롯한 인어들이 물을 조종할 때 물의 모습이 둥근 방울의 형태가 아닌 여섯 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입방체라는 점이다. 이것은 영화 초반부 카이의 내레이션으로 영화의 세계관을 소개할 때 등장한 8bit 스타일의 연출과 어떤 접점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