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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05. 2018

익숙해진 리들리 스콧의 비관주의

<올 더 머니> 리들리 스콧 2017

 80세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 커버넌트>가 개봉한 지 채 1년이 지나기 전에 신작을 발표했다. 영화의 원제처럼 세상의 모든 돈(All The Money In The World)을 가진 J.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손자 J. 폴 게티 3세(찰리 플러머)가 납치되었던 실화를 그려낸 작품이다. <올 더 머니>는 최근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에이리언: 커버넌트>, <마션> 등의 큰 작품들과 <카운슬러> 등의 작은 영화들을 번갈아 연출하던 그의 또 다른 작은 작품으로 느껴진다. 원래 J. 폴 게티를 케빈 스페이시가 연기하고, 이미 촬영까지 마쳤지만 그의 성폭행 전력이 폭로되면서 그의 출연분을 전량 편집하게 되었다. 개봉을 두 달 앞두고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캐스팅해 9일 만에 재촬영하고 개봉 일정을 단 하루도 미루지 않았고, 게다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를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리들리 스콧과 크리스토퍼 플러머, 미셸 윌리암스 등 각자의 능력과 할리우드식 영화 공정의 놀라움이랄까? 하지만 이런 영화 외적인 이슈들이 주는 놀라움에 비해 영화 자체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는 로마에서 J. 폴 게티 3세가 납치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납치된 손자와 게티 가문의 역사를 드러내는 플래시백, 아들을 구하기 위한 몸값 1,700만 달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일(미셸 윌리암스), 게티의 명을 받아 손자의 구출 협상에 뛰어는 플레쳐 체이스(마크 월버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세상의 모든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더 많은 돈과 물질을 원하는 게티는 자신의 손자라는 한 개인마저 자신의 소유물로 두고 싶어 한다. 결국 게티가 원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인간마저 자신의 소유물로만 바라보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기어고 값을 부여하여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려는 게티의 탐욕을 노골적으로 담아낸다. 그러나 너무나도 노골적인 상황과 상징들, 가령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게티의 흉상과 같은 소품들은 도리어 영화를 심심하게 만든다. 도리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전형적인 “아이를 유괴당한 어머니”로그려지지 않는 게일의 캐릭터이다. 그는 몰려드는 기자들 앞에서 “내가 우는 모습을 찍고 싶은 건가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게티의 냉담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듯이, 동시에 게티가 보여주는 야만적인 탐욕이 드러내는 끔찍함이 게일의 표정과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자본과 탐욕에 관한 노골적인 상징들이 난무하는 영화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게일의 표정만이 새롭게 다가온다.

 리들리 스콧 하면 장엄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장인으로 알려져 있다. 리들리 스콧을 생각하면 <블레이드 러너>의 사이버펑크적인 풍광이나 <글레디에이터>의 검투장, <마션>의 화성과 같은 장면들이 떠오른다. <올 더 머니>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풍광들을 담아낼 수 없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게티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를 얻기 위해 협상하러 가는 장면, 자신의 전생이 로마의 황제였다며 손자와 유적지를 돌아보는 장면 등에서 드러나는 스케일은 마치 리들리 스콧의 인장인 것 마냥 영화 속에 놓여 있다. ‘세상의 모든 돈’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장면들이랄까. 아쉽게도 이러한 장면들은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대학살 시퀀스와 같은 리들리 스콧의 비관주의를 강조하는 데 그친다. 그는 여전히 괜찮은 이미지들을 선보이는 장인이지만, 다시는 그의 영화에서 <마션>과 같은 즐거움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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