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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02. 2018

한국형 가부장제 블록버스터의 극단

<염력> 연상호 2017

 어느 골목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 신루미(심은경)는 방송에도 소개될 정도로 전도유망한 청년사장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치킨집이 있는 골목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고, 루미의 어머니(김영선)가 용역들과 대립하던 중 사망한다. 그와 동시에 영화는 10년 전 가족을 떠난 루미의 아버지 신석헌(류승룡)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평범한 은행 경비원이었던 석헌은 루미 어머니가 죽던 날 이상한 약수물을 먹고 염력이 생긴다. 처음엔 라이터 하나 정도를 옮기는 수준이었지만, 어느새 이런저런 묘기를 부릴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이걸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른 철거민들과 함께 투쟁을 이어가던 루미를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이내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석헌은 루미와 함께 건설회사의 홍 상무(정유미), 용역회사 민 사장을 상대하게 된다.

 <염력>은 여러모로 이상한 작품이다. 오프닝부터 이상하다. 루미의 치킨집이 방송을 타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용역깡패들이 루미의 가게를 공격하고, 루미의 어머니를 죽이게 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병원에서 루미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자, 갑자기 이상한 유성이 떨어지는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등장하고, 떨어진 유성에서 흘러나온 시퍼런 물질이 들어간 약수물을 마시는 석헌의 모습이 등장한 후 <염력>이라는 제목이 등장한다. 보통의 초능력 영화 혹은 슈퍼히어로 장르의 영화였다면 초능력을 얻게 될 인물은 응당 루미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이 우연한 계기로 초능력을 얻고 그것으로 정의구현 혹은 복수를 한다는 것이 관객에게 익숙한 서사다. 그러나 <염력>은 갑작스레 석헌을 등장시키고, 그에게 초능력을 부여한다. 그것도 루미와 함께 가게를 일군 아버지가 아닌, 빚쟁이를 피해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아버지 캐릭터에게 갑작스레 초능력을 부여한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아버지 됨’에 주목한다. 석헌이 직접 대사로 “이제라도 아버지 노릇 좀 해보라고 이런 능력이 생겼나 봐”라고 말할 정도이다. 연상호 감독의 전작 <부산행>의 석우(공유)가 보여준 부성애는 <염력>이 설파하는 ‘아버지 됨’에 비하면 그저 천만 관객을 위한 하나의 신파코드 정도로 보일 정도다.

 잘 알려져 있듯 <염력>은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삼는다. 굉장히 직접적으로 용산참사 당시의 상황과 유사한 이미지들을 영화 속에 그려 넣어,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상가 건물에 어떤 구조물을 쌓은 모습, 건물 난간에 매달린 사람, 건물 위로 물을 쏘아 올리는 살수차, 크레인으로 끌어올린 컨테이너와 그 속의 경찰 특수부대, 온라인으로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을 생중계하는 인터넷 방송 등의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관객의 머리 속에 2009년 1월의 용산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용산참사라는 사건마저 석헌의 아버지 됨을 강조하고, 1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가 아버지임을 회복하기 위한 장치로써만 기능한다는 점이다. <염력>의 출발점이 되었던 ‘사건 당시에 그들을 도울 초능력자/슈퍼히어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력은 철거민 당사자인 루미와 초능력을 가지게 된 석헌이 부녀관계로 설정되면서부터 철저히 ‘아버지’라는 존재를 위해서만 활용된다. 철거민들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뉴스 푸티지 장면은 차라리 <인류멸망보고서>에서 봉준호가 출연한 장면이 나은 수준이고, 극 중 제대로 된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철거민들은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조금 격하게 말하자면, <염력>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위해 용산참사라는 사건을 착취하는 영화이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이 보여준 성취를 생각하면 <염력>은 그저 역겨울 뿐이다.

 영화의 크레딧에서 풀네임이 등장하는 캐릭터는 셋뿐이다. 루미와 석헌, 그리고 철거민을 돕는 변호사 캐릭터인 김정현(박정민)뿐이다. 다른 철거민 혹은 홍 상무나 민 사장 등의 악역 대신 정현만이 이름을 지닌 캐릭터인 이유는 무엇일까? 석헌은 정현을 보자마자 “루미에게 관심 있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 아니냐”라고 묻는다. 영화는 갑작스레 둘을 러브라인으로 묶고, 영화 말미에 가선 정상가족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사실 정현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있으나 마나 한 캐릭터다. 자본과 국가폭력의 맞서는 소시민들의 무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이미 존재하는 철거민 캐릭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될 일이다. 정현은 그야말로 그의 구겨진 명함과 홍 상무의 빳빳한 명함을 대비시키는 것 이외에 전혀 기능하지 못한다. 때문에 하필이면 그가 이름을 지닌 캐릭터라는 지점은, 철거민 농성이라는 사건을 통해 아버지라는 이름을 회복한 석헌에 이어, 그의 가족을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노선 위에 올려놓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일 뿐이라는 생각만 들게 만든다. 결국 <염력>은 아버지라는 이름과 정상가족 보존을 부르짖는, 한국형 가부장제 블록버스터의 극단에 선 작품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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