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2. 2018

냉전시대 남성성에 대한 블랙코미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 델 토로 2017

*스포일러 포함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많은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를 드디어 감상했다. 영화는 소련과의 우주개발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의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가 어느 날 실험실에 도착한 수중 괴생명체(더그 존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모그래피 전체가 기괴한 비주얼로 가득한 기예르모 델 토로지만, 데뷔작인 <크로노스>부터 영화의 주된 테마는 사랑이었다. 그것이 연인의 것인지, 가족에 얽힌 것인지 등 형태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노골적인, 그리고 꽤나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다. 앞선 영화들이 고딕 호러, 판타지, (안티)슈퍼히어로 등의 장르를 빌려 이야기했다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그 대상만 괴생명체일 뿐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영화가 담아내는 이종족(계급) 간의 사랑과 마이너들의 연대는 델 토로의 작품에서, 그리고 그가 오마주를 바치고 있는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코드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의외로 20세기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엘라이자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의 집 TV에서는 끊임없이 고전 뮤지컬 작품들이 흘러나오며, 둘이 함께 탭댄스를 흉내 내는 장면 또한 등장한다. 후반부의 어느 장면은 <라라랜드>가 그랬듯, <브로드웨이 멜로디>의 장면을 유사하게 인용한 직접적인 뮤지컬 시퀀스(영화에서 유일하게 샐리 호킨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가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의 장르 자체가 뮤지컬인 작품은 아니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는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고 있는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더욱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관객들이 영화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러한 통속성을 채우는 캐릭터들은 그야말로 마이너들의 총집합이다. 주인공인 엘라이자는 장애인 여성이며 청소노동자이고, 그의 룸메이트나 다름없는 자일스는 성소수자이다. 엘라이자의 절친한 동료인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는 흑인 여성이며,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괴생명체는 앞선 등장인물들의 마이너함을 합친 것만 같은, 총체적인 타자의 위치에 서있다. 좀 더 범위를 넓혀보자면 소련의 스파이로 등장하는 호스프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 역시 이방인으로서 마이너 한 지위를 가진다. 이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악역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백인 헤테로 남성이며 심지어 군인이다. 첫 등장부터 전기충격기가 달린 곤봉을 들고 등장하는 모습과 용변 후 손 씻기에 관한 그의 철학을 보고 있으면 그가 과시하는 남성성 자체가 영화의 악역임을 눈치챌 수 있다. 친절한 델 토로 감독은 혹시라도 영화가 상정하고 있는 악역이 냉전시대 남성성임을 눈치채지 못할 관객이 있을지 염려하여 자일스가 자주 찾는 식당 장면을 영화 안에 집어넣는다. 자일스는 맛대가리 없는 케이크를 파는 곳임에도 건장한 백인 남성이 운영하는 식당에 반복하여 찾는다. 자일스는 식당의 주인과 말이 잘 통한다 여기며 호감을 쌓는다. 하지만자일스가 그의 손을 잡자 식당 주인은 혐오스럽다는 듯 손을 빼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가게를 찾은 흑인 부부를 매섭게 내쫓아버린다. 결국 영화 속에서 악역으로 상정되는 것, 주인공 일행의 대척점에 서있는 것은 냉전시대의 남성성이다. 심지어 흑인인 젤다의 남편마저 그러한 남성성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결국 <셰이프 오브 워터>는 멜로드라마의 껍데기를 쓴 냉전시대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진다. 엘라이자 일행이 괴생명체를 실험실에서 탈출시키는 장면에서 박살 나는 스트릭랜드의 캐딜락이라던가, 괴생명체에 의해 목이 날아가 뮤트(Mute) 되면서 퇴장하는 스트릭랜드의 모습 등을 보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겨냥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확실하게 보인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델 토로가 지닌 멕시코인이라는 정체성, 그가 그간 보여준 오타쿠스러운 마이너 한 감성 등의 집합이다. (물론 델 토로 감독이 퀴어는 아니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가‘트럼프 시대의 퀴어영화’라는 평가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종, 젠더, 계급 등 사회 전 범위에 걸친 혐오와 차별이 다시금 활개를 치는 지금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그것의 뿌리를 조롱하려 한다. 이를 위한 판을 준비하는 초반부와 뮤지컬 장면의 어색함 등에서 아쉬움이 느껴지기에 이 작품을 델 토로의 최고작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겟 아웃>의 경우처럼 동시대의 중요한 텍스트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승자는 넷플릭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