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4. 2018

행복한 후유증에 시달리다

<패딩턴 2> 폴 킹 2017

 동화를 원작으로 한 2014년작 <패딩턴>은 아름다운 가족영화였다. 벤 휘쇼가 목소리를 맡은 패딩턴의 사랑스러움은 물론, 메리(샐리 호킨스), 헨리(휴 보네빌), 루시(매들린 해리스), 버드(줄리 월터스), 조나단(사무엘 조슬린) 등의 브라운 가족이 보여주는 발랄함,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매력적인 악역, 곳곳에 조연으로 등장한 피터 카팔디, 짐 브로드벤트 등 영국의 대표적인 배우들까지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3년 만에 등장한 속편은 런던 생활 3년 차인 패딩턴이 페루에 남아있는 루시 이모(이멜다 스턴튼)의 100세 생일 선물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그린다. 루시의 선물을 찾던 패딩턴은 그의 친한 이웃인 그루버(짐 브로드벤트)의 골동품점에서 낡은 팝업북을 발견한다. 그 팝업북은 런던의 명소를 담아낸 책으로, 패딩턴은 평생 런던에 오는 것을 꿈꾸던 루시 이모에게 줄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높은 가격. 패딩턴은 이발소, 창문닦이 등 다양한 일거리를 찾아 나서며 돈을 모은다. 그러던 중한물간 유명 배우 피닉스(휴 그랜트)가 팝업북을 훔치는 것을 목격한 패딩턴은 추격전을 벌이며 그를 뒤쫓지만 결국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패딩턴과 브라운 가족은 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패딩턴 2>는 동화에 걸맞은 아름다운 비주얼을 선사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리는 것처럼 웨스 앤더슨 스타일의 대칭 구도와 색감이 눈을 사로잡고, 런던의 풍경 속에 아기곰 패딩턴이 자리 잡은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비주얼을 선사한다. 패딩턴이 루시를 그리워하는 두 번의 환상 시퀀스, 특히 팝업북 시퀀스의 아름다움은 놀랍기만 하다. 전편에서 장난감 집을 통해 브라운 가족을 설명했던 시퀀스는 속편에선 탈옥 시퀀스에 활용되는데,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탈옥 시퀀스로 기억되지 않을까? 영화 초반부 3년간 달라진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고전영화/광고 영상들은 영화적으로 그들의 쌓인 시간을 설명하며, 삽화가인 메리의 그림을 활용한 몇몇 몽타주 시퀀스 또한 적재적소에서 몰입감을 더해준다. 그 밖에 <007>, <미션 임파서블>, <원티드> 등의 액션 영화와 <해리포터>, <모던 타임즈> 등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시퀀스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영화광들에게 쏠쏠한 재미를 준다. 게다가 오마쥬나 패러디만을 위해 들어간 장면들이 아닌, 적재적소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영화들을 골라와 만들어낸 장면들이기에 가볍지 않고 영화에 조화롭게 녹아든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기차 액션 시퀀스는 액션의 구성은 물론이거니와, 대담하면서도 효과적인 촬영과 기차가 등장하는 수많은 액션 영화들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특히 영화의 악역인 피닉스는 ‘영국 배우’임 그 자체를 악역의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면서도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홀로 영국의 대표적인 캐릭터들, 가령 햄릿이나 맥베스 같은 셰익스피어 극 속의 캐릭터나 기사, 수녀, 도둑 등을 홀로 연기하는 모습, 자신이 유명한 배우임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강조하는 모습 등은 영국의 대표적인 배우 중 한 명인 휴 그랜트가 피닉스를 통해 본인과 본인을 포함한 영국의 (이제는 나이 든) 배우들 모두를 패러디하는 것만 같다. 특히 피닉스의 집에 가득 전시되어있는 젊은 휴 그랜트의 사진들은 셀프 패러디의 화룡정점이다.

 전작이 전형적이면서도 대안적인 형태의 가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다룬 작품이라면, 이번 작품에서는 선의를 통해 맺어지는 친구관계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패딩턴이 런던에서 보낸 3년의 시간 동안 친해진 동네 이웃들과 감옥에 수감돼서 만난 감방동료들 등이 그의 새로운 친구로서 영화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패딩턴이 보내는 절대적인 선의에 대한 리액션으로 패딩턴과 친구관계를 맺는 존재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패딩턴 2>가 담아내는 친구 관계는 이렇다. 서로가 서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고, 그로 인해 쌓인 신뢰와 선의가 존재하며, 그것은 한 개인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작용을 한다. 브라운 가족은 패딩턴을 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의 계획은 다섯 명의 가족 구성원 그리고 패딩턴이 한치의 오차 없이 활약해야 가능하다. 그들의 계획에서 오차가 발생하는 순간 그들은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오차를 메운다는 전개는 그들의 가족-친구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유지되는 것인지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결국 사람들이 맺는 관계 속 선의는 일방이 아닌 쌍방으로 존재하며,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패딩턴 2>의 교훈이다. 너클스(브렌단 글리슨)를 비롯한 탈옥수들이 결국 패딩턴을 위해 돌아오는 것 또한 이런 교훈에 힘을 실어준다. 모두에게 예의를 지키자, 가족, 이웃, 동료와 다른 인종, 직업, 나이대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똑같이 행동하자. 2010년대의 동화인 <패딩턴 2>가 전달하는 교훈이다.

 나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라고 기억한다. 내 또래의 세대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극장에서 처음으로 접한 영화이기에 개인적으로 더욱 애착이 간다. 그렇게 시작된 해리포터와의 인연은 <신비한 동물사전>으로 이어지는 지금까지의 행복함으로 남아있다. <패딩턴 2>를보고 나오면서 “누군가의 첫 영화가 <패딩턴 2>라면 그만큼의 행복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첫 영화가 <해리포터>였기에 행복했던 것처럼, 아니 <패딩턴 2>는 그것보다 더욱 뛰어나고 행복한 작품이기에 더욱 행복한 경험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길 바라게 되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생애의 첫 영화가 <패딩턴 2>라면 어떤 기분일까? 이 영화를 통해 친구 맺기에 대해 배우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경험을 갖게 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머릿속으로 기억나는 영화 속 장면들을 재생시키며 이런저런 행복한 생각들을 이어나간다. 사랑스러운 후유증이 생각 보다 오래 남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