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19. 2018

박동하는 육화 된 정치의 형상

<120 BPM> 로빈 캉필로 2017

*스포일러 포함 


 액트업(Act Up)은 에이즈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에 맞서는 행동주의 단체이다. 1987년 뉴욕에서 창립된 액트업은 1989년 액트업파리의 창단으로 유럽에서의 활동 역시 시작한다. 2017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120 BPM>은 이 시기 액트업파리의 활동가들을 그려낸 작품이다. 액트업파리에 막 가입한 나톤(아르노 발로아), 창립멤버인 션(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대표격인 회원인 티부(앙투안 라이나르츠), 액트업파리의 실질적인 행동을 이끄는 소피(아델 에넬) 등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펼쳐진다. 영화의 전반부는 액트업파리의 활동이 무엇이고, 그들의 목표가 무엇이며, 어떻게 활동을 전개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은 션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그의 죽음이 액트업파리의 운동과 션 본인의 활동에 어떻게 얽히는지를 그려낸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션의 죽음 이후 액트업파리의 활동자이자 친구들은 그의 집에 하나둘씩 모인다. 그중 한 명이 미완의 추도사를 읽는다. 추도사 중엔 “션의 몸이 정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120 BPM>의 핵심은 바로 그 구절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톤을 비롯한 신입 멤버들은 한 활동가에게 액트업파리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그중 “외부의 사람들은 네가 에이즈 양성이든 음성이든 상관없이 액트업의 활동가 모두를 에이즈 양성이라고 생각하고 대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나톤은 에이즈 음성이지만 액트업에 가입하고 활동을 이어간다. 결국 액트업의 활동의 핵심은 이것이다. 에이즈 양성인 사람의 몸, 더 나아가 그들과 연대하고 행동하면서 에이즈 양성이라 다뤄지는 몸은 어떻게 정치적으로 등장하는가? 기피의 대상이며, 어둠 속에 있는 성소수자/직업여성/약물중독자라 손가락 받는 사회적 소수자인 그들의 육체에 어떻게 밝은 빛을 비출 것인가?  

 영화의 처음 절반 가량 이어지는 액트업파리의 행동들은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실행된다.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에이즈 환자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제약회사를 급습하여 사무실에 가짜 피를 뿌린다던가,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정부기관이라 홍보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기관의 포럼에 난입하여 발언하고, 한 활동가가 에이즈로 인해 사망하자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서 행진하는 등의 행동이 이어진다. 그중엔 수업 중인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청소년들에게 콘돔과 에이즈 예방에 관련된 홍보물을 나눠주며 에이즈와 예방수칙에 관한 설명을 하는 행동도 있다. 동시에 학교의 교장에게 청소년들의 피임과 에이즈 예방을 포함한 안전한 성생활 보장을 위한 콘돔 자판기 설치 권고를 지키라는 요구를 하고, TV 카메라를 대동해 이를 뉴스에 내보내기도 한다. 나톤과 션의 섹스 장면에서 콘돔 착용이 강조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작용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비록 과격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행하지는 않는 운동들이며, 이를 통해 호모포비아를 비롯한 여러 혐오자들로 인해 비가시화된 에이즈 환자의 몸과 현재를 드러낸다. 액트업파리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몸을 드러냄으로써 사회구성원으로서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외치며, 그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 에이즈 확산을 방지할 예방책을 요구한다. 결국 그들이 몸을 드러내는 것은 곧 정치적 행동이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자 요구가 된다. 한 국가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할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들의 몸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120 BPM>은 1980~90년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음악의 리듬이다. 액트업파리의 활동가들은 시위나 회의 등의 활동을 마치고 클럽을 찾아 춤을 추곤 한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반복되는 연출이 있다. 조명 아래서 춤추는 사람들을 잡던 카메라는 포커스를 조명에 비친 먼지로 옮겨간다. 먼지들은 마치 SF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바이러스 같기도 하고, 우주의 별처럼 빛나기도 한다. 포커스 아웃된 사람들이 일렁이는 흐릿한 형상은 우주의 성운처럼 느껴지고 떠다니는 먼지들이 반짝이며 자그마한 소우주를 이룬다. 그들의 소우주에는 연대의 물결이 있고, 행동하는 육체가 있고, 위로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이러한 장면 뒤에 반짝이는 조명 아래 액트업파리 활동가들의 얼굴이 잠깐씩 비친다. 그 빛이 잠시 스쳐가는 빛이 아닌, 박동하는 그들의 육체 위에 계속 비치는 빛이기를, 120 BPM의 음악이 끝나고 찾아오는 묵념의 엔드크레딧에서 기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